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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서 첫 박사학위 받은 미국인 조지 바이탈리 씨] “태권도는 한국이 전세계에 준 최고의 선물”


북한서 첫 박사학위 받은 미국인 조지 바이탈리 씨

북한서 첫 박사학위 받은 미국인 조지 바이탈리 씨

북한이 지난 달 미국인에게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해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뉴욕의 전직 경찰이자 태권도 유단자인 조지 바이탈리 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북한에서 태권도학 박사학위를 받은 바이탈리 씨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문) 바이탈리 박사님, 안녕하세요. 우선 북한에서 태권도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경위부터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답) 원래 뉴욕 ‘존 제이 컬리지’라는 대학에서 범죄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 때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고 경찰 신분으로 공부를 계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이 스포츠 과학 부문 태권도 박사 과정을 개설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이미 이수한 과목과 연속성이 있고 제 목표와도 일치해 시작하게 됐습니다.

문) 평양에서 받으신 학위증명서를 저도 봤는데요. 학위수여 주체가 대학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더군요.

답) 예. 북한에선 학위를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라는 곳에서 심사해 그 곳에서 직접 수여합니다. 어떤 대학에서 공부해도 마찬가지죠. 미국처럼 개별 대학이 학위를 주는 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문) 북한 측에서도 바이탈리 씨가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첫 미국인이라고 그러던가요?

답) 그렇게 들었습니다. 북한의 스포츠 과학 태권도 부문에서 첫 미국인 박사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측에 정식으로 문의했죠. 그랬더니 전 학문 분야를 통틀어 미국인으로선 제가 북한에서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거라고 알려주더군요.

문) 태권도 8단의 무도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엔 어떤 공부를 하셨습니까?

답) 미국의 경찰학교를 졸업했구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뉴욕 ‘존 제이 컬리지’ 에서 범죄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습니다. 이미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다시 학사 과정으로 돌아가서 미국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건데요. 미국인으로 어떤 의미를 두시는지 궁금하네요.

답) 태권도는 단순히 발로 차고 주먹을 지르는 운동이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자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서 정식으로 박사가 되면서 제게 얼마나 더 많은 기회가 생겼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학위를 통해 미국과 북한의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소통 창구를 열어 양국 관계가 좀 더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문) 좀 더 개인적인 얘길 해 보죠. 태권도는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답) 16살 때인 1974년 처음으로 태권도장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당수도를 연마했고 권투와 레슬링도 배웠습니다. 그게 1971년 무렵입니다.

문) 40년 전이군요. 태권도의 어떤 점이 그렇게 끌리셨길래 수십 년 동안 수련을 계속하고 계신 걸까요?

답) 전 삐쩍 마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술주정꾼이어서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도무지 저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기죠. 그러던 중 1971년 두 번째 태권도 도장이 뉴욕 브루클린에 생겼습니다. 제 스승인 김광성 사범님을 그 때 만났고 그 이후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제겐 아버지와 같은 그 분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조지 바이탈리 씨의 박사증

조지 바이탈리 씨의 박사증

문)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것도 화제였지만 미국의 경찰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거든요.

답) 1981년 뉴욕 주 경찰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뉴욕 주 각 군에 배치됐고 1986년 뉴욕시로 옮겨온 뒤 이후 은퇴할 때까지 25년 동안 그 곳에서 근무했습니다. 뉴욕 주지사 2명에 대한 경호 업무를 맡기도 했고, 검찰청에서 각종 강력범죄와 조직폭력 사건들을 담당했습니다.

문) 그런 경력과 북한이라는 조합이 선뜻 연결이 잘 안 되거든요. 북한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신 거죠?

답)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미국 태권도 팀을 이끌고 간 게 계기가 됐습니다. 저희는 정치와는 관계 없이 국제태권도연맹 초청으로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북한에 갔습니다. 전 그때 마리오 쿠오머 당시 뉴욕 주지사 사무실에 막 배치됐는데요. 순수히 태권도 관련 방북이라는 걸 확실히 했습니다. 뉴욕 주 경찰 잡지에서 당시 저의 북한 방문을 소개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문) 그래도 미국 경찰이 북한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데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 않았을까요?

답) 미국이 정말 자랑스러운 건 미국인들에겐 선택의 자유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나 정치적 모임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어떤 곳으로도 여행할 자유가 있죠. 1989년 당시 태권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에 가려 했을 때도 미 정부는 이를 승인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관계 없이 말입니다. 이처럼 태권도가 얼마나 제게 새로운 기회와 문을 열어줬는지 모릅니다.

문) 북한에서 태권도학 박사라는 학위도 받으셨구요. 이제 이를 통해 어떤 계획, 목표를 이룰 생각이신지요?

답) 우선 태권도의 보다 완전한 역사를 전하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태권도야 말로 한국이 세계에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는 1950년대에 한국 육군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 정식 종목으로까지 채택돼 현재 2백여 개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엔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초대 총재를 비롯해 남북한의 여러 태권도인들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 이들은 전세계 수많은 태권도인들이 태극기 앞에 머리를 숙이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한국의 어떤 정치인들이나 문화 프로그램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들의 업적이 꼭 기억되게 하고 싶습니다.

문) 그러면 현재 태권도가 남한의 WTF와 북한의 ITF로 나뉘어 서로 불편한 관계인 데 대해서도 할 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답) 두 조직간의 반목과 질시는 태권도 정신에 어긋나고 무도와도 거리가 멉니다. 부끄러운 일이죠. 양측이 협력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정말 많습니다. 태권도도 하나고 한민족도 하납니다. 북한이 자신들이 적으로 여기는 한국 군에서 출발한 태권도를 받아들이고 육성시킨 사실 자체도 놀라운 일 아닙니까?

문) 예. 바이탈리 박사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미국인으로 북한에서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태권도인 조지 바이탈리 씨와의 인터뷰를 전해 드렸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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