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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핵 합의 18년...이행이 관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표된 미-북 합의에 대해 ‘두고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북 간에 여러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행 과정에서 파기되거나 사문화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 과거 미-북 간에 이뤄졌던 주요 합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문) 미국과 북한이 이번에 대북 식량 지원과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 잠정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동시에 발표했는데요. 양측이 핵 문제와 관련해 합의를 이룬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요?

답) 네, 미국과 북한은 지난 18년간 북 핵 문제를 풀기 위해 크고 작은 합의와 공동성명, 코뮤니케 등을 발표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1994년 이뤄진 제네바 기본합의와 2000년 공동 코뮤니케, 그리고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문) 하나씩 짚어 봤으면 좋겠는데요. 먼저 미-북간에 이뤄진 첫 번째 핵 합의죠, 제네바 기본합의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답) 네, 제네바 기본합의는 말씀하신대로 1994년에 미-북 간에 이뤄진 최초의 핵 합의인데요. 핵심 내용은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중유를 제공하고 북한은 핵 시설 동결과 핵확산금지조약 (NPT) 복귀,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특별사찰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하지만 제네바 기본합의는 이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불거졌죠?

답) 네, 당시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 주기로 약속 했는데요. 실제로 이 경수로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 건설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공사 진척이 늦어졌구요. 또 중유 제공도 자금 확보가 안돼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문) 제네바 기본합의가 파기된 것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답) 그렇습니다.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원자폭탄의 재료가 되는 모든 핵 물질, 즉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을 못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어기고 파키스탄 등지에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를 몰래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또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이를 시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경수로 사업은 중단되고 제네바 기본합의는 파기됐습니다. 여기서 제임스 켈리 전 동아태 차관보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제임스 켈리 전 동아태차관보] “CERTAINLY SIGNIFICANT…

켈리 전 차관보는 당시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는 광범위하고 분명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문) 미-북 간 공동 코뮤니케도 있었죠?

답) 네, 미-북 공동 코뮤니케는 지난 2000년10월에 이뤄진 합의인데요. 북한의 2인자인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발표된 것입니다. 내용은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제로 전환하고 미-북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그런데 이 공동 코뮤니케도 결국 흐지부지 되지 않았나요?

답) 그렇습니다. 당시 양측은 관계 개선을 위해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미-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동에서 위기가 발생한데다,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부시 당선자 진영에서 미-북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바람에 이 공동 코뮤니케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문) 9.19공동성명도 중요한 핵 합의 아닌가요?

답) 네, 9.19공동성명은 지난 2005년9월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채택된 것인데요, 세 가지 핵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중유를 지원하는 내용입니다.

문) 9.19공동성명은 아직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답) 글쎄요. 사람에 비유하면 9.19 공동성명은 지금 ‘명맥만 살아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왜냐면 북한이 2009년 5월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그 이듬해 11월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는 등 9.19 공동성명을 정면으로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6자회담은 공전되고 9.19 공동성명도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문) 지금까지 제네바 기본합의, 미-북 공동 코뮤니케, 9.19 공동성명 등을 살펴봤는데요. 외교적 측면에서 합의 형식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답)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 미-북 공동 코뮤니케, 9.19 공동성명 모두 국가간의 약속을 담은 외교적 문서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다만 제네바 기본합의와 미-북 공동 코뮤니케는 양자 차원의 합의인 반면 9.19 공동성명은 미국과 북한은 물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한 다자 차원의 합의라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또 2000년에 발표된 미-북 공동 코뮤니케도 기본적으로 공동성명과 큰 차이는 없으나 미-북 수뇌부가 발표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다소 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문) 그럼 이번에 발표된 미-북 합의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답) 이번에 발표된 것은 미국과 북한이 베이징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 결과를 정리해 언론에 발표하는 일종의 ‘언론발표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공동성명 등에 비해 그 외교적 격이 높지 않고 구속력도 그리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 지금까지 제네바 기본합의부터 9.19 공동성명까지 미-북 간에 이뤄진 일련의 핵 합의를 살펴봤는데요. 과거의 합의가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봐야 할까요?

답) 전문가들은 과거 미-북간에 이뤄진 핵 합의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합의보다 이행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합의를 이루더라도 이행이 제대로 안되면 하루아침에 합의가 파기되고 핵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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