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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유엔 보고서, 북한 제재 회피에 중국 협력 지적...중국 185회 언급


지난해 3월 중국과 북한이 인접한 두만강에서 북한 남양시와 중국 투먼 통상구를 오가는 화물차. (자료사진)
지난해 3월 중국과 북한이 인접한 두만강에서 북한 남양시와 중국 투먼 통상구를 오가는 화물차. (자료사진)

최근 공개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의 불법 활동과 제재 회피에 중국인과 중국 기업 등이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정황이 담겼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활용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들을 살펴보는 `심층취재,’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의 최근 보고서에는 중국을 의미하는 ‘차이나(China)’ 혹은 ‘차이니즈(Chinese)’라는 단어가 총 185번 등장합니다.

보고서가 첨부문서(annex)를 제외하고 총 92페이지인 점을 감안하면, 한 페이지 당 적어도 2번씩 중국인 혹은 중국 기업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겁니다.

각국의 대북 제재 위반 사례나 북한의 제재 회피 정황을 지적하는 보고서에 중국이 사실상 매 페이지마다 거론되는 건, 그만큼 북한의 불법활동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이 중국을 대북 제재 회피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보고서에 드러난 중국인과 중국 기업의 협력 부분은 북한의 금지품목 조달과 운송, 금융 등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금지품목 조달의 경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쓰인 주요 부품이 중국 업체로부터 조달된 사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2월 북한이 광명성 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미사일의 파편에서 EMI 필터와 볼 베어링, 압력전송기 등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때 사용한 부품을 회수했습니다.

이 중 EMI 필터는 ‘베이징 이스트 이그지비션 하이텍 테크놀로지’라는 중국 기업이 만들었고, 압력전송기는 베이징에 본사를 둔 ‘베이징 신장텡 센트리 테크니컬 테크놀로지’가 조달한 것으로 전문가 패널은 확인했습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2년 ‘은하-3’호 발사 당시, 타이완의 한 중개업자를 통해 영국산 압력전송기를 납품 받았지만, 전문가패널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조달처를 중국으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지난해 열린 ‘원산국제친선항공축전’ 당시 북한이 각각 뉴질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소형 항공기들을 선보였는데, 이들 역시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됐다고 전문가패널은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패널은 해당 항공기들을 ‘사치품’으로규정했지만, 중국 정부는 ‘각 회원국마다 사치품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항공기 수출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지난 2014년 한국 등에서 발견된 북한의 무인기들이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중국의 중개상 등을 통해 북한에 유입된 것으로 전문가패널은 추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 패널은 북한이 군사 목적의 상용 품목을 조달할 때 여전히 중국 중개인과 현금거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불법 무기 등을 해외로 수출할 때 중국인 등이 깊게 연관된 점도 주목됩니다.

지난해 8월 유엔은 북한산 철광석 2.3t과 북한이 만든 대전차 로켓탄 3만 개를 실은 선박 ‘제슌’ 호를 이집트 영해에서 적발한 바 있습니다.

문제의 선박은 캄보디아 깃발을 달았고, 선장도 북한인이었지만, 전문가패널은 이 선박의 운영에 중국식 이름을 쓰거나 중국 소재 선박회사와 연관된 최소 3명의 인물이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제슌 호는 싣고 있던 화물이 중국에서 만든 수중부품 펌프이며, 출발지가 중국이라는 내용의 허위 서류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7월 에리트레아로 향하던 항공 화물에서 발견된 대북 제재 품목도 최초 출발지를 중국으로 명시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월 채택한 대북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을 출발하거나, 도착지로 하는 모든 화물의 검색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에 실린 대북 제재 관련 화물들은 대부분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적발된 것들입니다.

금융 부문에 있어선, 북한의 제재대상 은행들이 중국에서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제재 위반 사례로 드러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광선은행은 중국 단둥에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지난해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적발됐던 단둥훙샹그룹을 이용해 미국 달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에 송금했습니다.

또 대동신용은행과 조선대성은행 역시 제재대상이지만 다이롄과 단둥, 셴양 등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패널은 확인했습니다.

특히 북한 국적자인 김철삼의 경우 수 백 만 달러를 중국으로 들여와, 이들 은행을 통해 다른 나라와 금융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전문가 패널은 밝혔습니다.

그 밖에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이 중국에 위장회사를 차린 뒤 각종 불법 활동에 연루된 사실과 함께, 중국 내 최소 4개 대학이 핵무기 혹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북한의 대학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사실도 담았습니다.

[녹취: 창 변호사] “China has been deeply involved in proliferating items…”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2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품 확산에 깊게 관여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몇 년 간 중국의 책임을 묻는데 소극적이었던 유엔이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이번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역할이 상당한 것으로 거듭 드러남에 따라, 미국 정부가 중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해야 한다는 ‘세컨더리 보이콧’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고든 창 변호사는 북한과의 불법 거래에 연루된 중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고, 이는 이들이 북한과의 거래에 ‘청신호’를 켜준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금융기관 등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본격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도 올해 초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 결의가 효과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필수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특히 ‘세컨더리 보이콧’이 미 금융시스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만큼, 중국 은행들 스스로도 북한과의 거래에서 오는 위험성을 줄이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 역시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지역 은행 등 각 지방 차원의 제재 이행은 매우 느슨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중국 은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잠재적으로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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