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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21주년, 그 배경과 의미

  • 최원기

중국의 천안문 사태가 21주년을 맞았습니다. 천안문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유혈 진압이 정당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최원기 기자와 함께 천안문 사태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니다.

문) 중국 천안문 사태가 벌써 21주년이 됐나요?

답)네, 지난 1989년 6월4일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으니까, 꼭 21주년이 됐습니다.

문)’천안문 사태’ 하니까 저도 과거 텔레비전 화면에서 중국 군인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들에게 총을 쏘며 진압하는 광경을 지켜본 일이 생각 나는데요. 먼저 천안문 사태가 어떤 사건이었는지 설명을 좀 듣고 얘기를 해볼까요?

답)천안문 사태란 지난 1989년6월 중국의 개방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공산당이 탱크를 동원해 유혈 진압한 사건입니다. 그 해 4월 중국의 대학생과 시민 등 10만 명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그 얼마 전에 사망한 호요방 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재평가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은 두 달 뒤인 6월에 군 병력과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가해 수 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문)당시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자유의 여신상’도 세우지 않았나요?

답)네, 중국 학생들은 시위를 하는 도중 천안문 광장에 9미터 높이의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세웠습니다. 또 학생들은 정부 당국에 계엄령 철폐, 군대 철수, 언론 자유 보장, 시위 학생에 대한 보복 금지 등 4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와 정부간 대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저도 한 시민이 중국 군 탱크에 맞섰던 장면이 생각나는데, 이 당시 사망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됩니까?

답)정확한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90년 7월 민간인 사망자가 8백75명 그리고 부상자가 1만4천5백50이라고 발표했는데요. 국제적십자사는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고, 비공식 집계로는 사망 5천여 명, 그리고 3만여 명이 부상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문)이렇게 사망자 숫자를 놓고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직 사건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뜻도 되는데요. 피해자 유족들은 중국 정부에 사건 진상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요?

답)네, 천안문 피해자 유족들은 중국 정부에 사건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1백28명으로 구성된 천안문 피해자 유족들은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와의 대화 그리고 피해자 규모와 신상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도 ‘중국 정부는 당시 강경 진압 사실을 인정하고 유가족과 대화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문)천안문 사태로 수감된 사람도 많죠?

답)네, 천안문 사태로 해외로 망명하거나 체포돼 수감된 사람이 꽤 많은데요. 특히 그 중에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시위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가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해임되고 가택 연금된 조자양 같은 고위직 인사도 있습니다. 여기서 조자양의 비서로 7년간 수감된 통 바오씨의 말을 들어보시죠.

“조자양 전 총서기의 비서였던 통 바오씨는 자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천안문 사태의 억울함을 더 이상 호소할 기력이 없다며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이 중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천안문 사태와 관련해 가장 궁금한 것은 당시 중국 수뇌부에서 누가 강경 진압을 명령했나, 하는 것인데요?

답)지난 2000년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 어페어즈’가 중국의 비밀 문서를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이 문서는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 수뇌부의 회의 내용을 기록한 것인데요. 이 문서에 따르면 시위가 발생하자 중국 수뇌부는 강경파와 유화 파로 갈라졌습니다. 그 후 시위가 확대되자 당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등소평이 이붕 등 강경파의 지원을 받아 강경 진압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아까 천안문 사태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는 소식도 전해드렸는데,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까?

답)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태를 ‘반혁명 사건’으로 규정하고 정부 당국의 진압이 정당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국 외교부의 장위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시죠.

“장위 대변인은 중국인들의 핵심적인 이익과 국가 상황을 고려해 그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000기자와 함께 천안문 사태 21주년을 맞아 천안문 사태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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