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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2만명 시대 2] 성공한 탈북자들


[탈북자 2만명 시대 2] 성공한 탈북자들

[탈북자 2만명 시대 2] 성공한 탈북자들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의 수가 이달 안에 2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내 드리고 있는 한국 내 탈북자들의 삶에 대한 특집방송,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좌절을 딛고 성공의 문을 연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서울에서 이오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남한에서도 유명한 탈북 가수 김용 씨,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로 더 유명합니다. 그는 3백 여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북한음식 전문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북한 냉면과 만두 등 20여 가지 포장제품을 한국 내 대형 할인매장 1백27 군데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북한 자강도 강계가 고향인 김용 씨는 평양국립교향악단 가수로도 활동했고 20대 젊은 나이에 중앙당 산하기관의 간부로 러시아에서 근무하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자유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에 회의가 생겨 한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아홉 개 나라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데 성공한 김 씨는 북한 출신이라는 독특한 배경에다 타고난 가창력과 입담으로 한국 방송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 출연 만으로는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아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음식사업. 1996년에 시작한 그의 북한음식 전문식당은 5년 만에 국내점포 70여 개, 연 매출 3백60억원의 식당 체인점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이곳 저곳에 투자를 하라는 유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한사회를 잘 몰랐던 김용 씨가 사기성 투자정보를 믿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탄탄하던 식당사업이 순식간에 휘청거렸습니다.

“김용 돈 벌었다. 현금 보유 많다 하니까 타당성이 없는 계획서 가져와서 얼렁뚱땅해서 돈을 가지고 나갈 사람들. 바로 수업료였습니다.”

결국 김용 씨는 큰 재산을 모두 날리고 지난 2002년 다시 빈손이 됐습니다.

김 씨 뿐아니라 다른 탈북자들도 비슷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멋모르고 다단계 판매에 손을 대 몫돈을 날리기도 하고, 큰돈 벌게 해준다는 사기에 휘말려 정착금까지 몽땅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자신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해 사업전략을 다시 세웠습니다. 안방에서 바로 주문해 먹을 수 있는 북한식 포장 냉면과 만두로 홈쇼핑에 다시 도전해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내년부터는 북한식 ‘아바이순대’로 품목을 확장해 나갈 계획에 더욱 바빠진 김 씨.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첫째는 신용사회입니다. 내가 표현하고 말 한 것은 무조건 지킨다는 거.”

‘믿음’과 ‘웃음’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는 김 씨는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탈북자 이모 씨는 남한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공부해 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했습니다.

“전산회계 자격증이 있고, 그 다음에 운전학원 다니면서 기능강사 자격증, 기능검정원 시험을 볼 수 있는 검정원 자격증이 있어요. 그 다음에 사회복지사 요양 보호사 1급.”

이런 노력 끝에 이 씨는 지난 9월, 경기도 A시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입사했습니다.

황해도 출신인 이 씨. 지난 2005년, 먹고 살길을 찾아 혼자 국경을 넘어 한국에 왔습니다.

내세울 학력도 경험도 없어 단순노동 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전단지를 돌리는 일도 하고 노점상도 해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길은 국가에서 발급한 실력인증서, ‘자격증’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지금은 시청 공무원으로 다른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듣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는 이 씨는 포기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간다면 한국은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살기 힘들어요. 저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게 큰 힘이 됐던 거 같아요. 이루고 싶은 거를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어요. 기간을 두고 천천히 하나하나 해 나가면 누구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한의사라는 전문직 영역을 개척해서 자리잡은 탈북자도 있습니다.

이충국 씨는 서울 강남의 50-60대 주부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한의삽니다. 인기의 비결은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해 주며 환자들과 소통하는데 있습니다.

“감사카드를 썼더니 지금 가을이잖아요. 어제도 자기 너무 싱숭생숭 했는데 편지 받고 너무 감사해서 좋았다고. 환자의 정서적인 정신적인 그런 거를 만져줘야죠. 그래야 그게 진정한 의사죠.”

평양 이과대학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우던 이 씨는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노동당 입당이 좌절되자 탈북을 결심해 1994년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국민들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박봉으로 첫 직장 일을 시작한 이 씨의 한국생활.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지식과 기술로 승부하는 전문직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또 한 번 사선을 넘는 각오로 공부해 그 어렵다는 경희대 한의대에 들어갔고, 지난 2002년 한의사가 됐습니다.

의사가 된 뒤에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았습니다. 경기도 하남에서 어렵게 병원을 유지하던 이 씨는 지난 2009년 2월 서울 강남으로 과감하게 병원을 옮겼습니다.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주변환경에 발 맞춰 ‘살 빼기’와 ‘주름 개선’으로 진료과목도 특화 시켰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특성과 한국사회 흐름을 철저하게 분석한 맞춤형 전략은 비로서 성공의 문을 열어줬습니다.

이 씨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준 버팀목은 ‘끈기’와 인내’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욕심 덜 부리고 자꾸 실력을 키워 나가고 열심히 노력하고 정말 사기 치지 말고 한 순간에 되겠다는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진실하게 사람들에게 대해주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는 거죠.”

실패를 교훈 삼아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 땀 흘려 얻은 자격증으로 경쟁력 있는 일꾼이 된 공무원,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맞춘 전략으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은 한의사. 그들의 이야기는 낯선 땅에서 삶을 개척해 내야 할 탈북자들도 이들과 어울려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가야 할 남한 사람들도 모두 귀 기울여 들어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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