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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2만명 시대 1] 달라진 탈북 양상과 탈북 동기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가 지난 4월 탈북자 등 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음식전문점 ‘류경옥’ 개점을 축하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가 지난 4월 탈북자 등 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음식전문점 ‘류경옥’ 개점을 축하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의 수가 이달 안에 2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한 달에 2백 명 정도가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들이 남한사회에 당당히 자리잡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습니다. 언젠가 다시 하나될 조국을 꿈꾸며 새로운 삶을 일구는 사람들 탈북자.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특별기획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오늘부터 네 차례에 걸쳐 방송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달라진 탈북 양상과 탈북 동기’ 편을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서울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제법 규모 있는 소매점. 젊은 주인 한철호 씨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한철호 씨는 지난 2006년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탈북자입니다. 북한에서 사범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던 한 씨가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배가 고파서도, 잘못을 저질러 도망쳐야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한 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은 외부세계를 바로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중국에서 몰래 들여 온 비디오 등을 보고 한국이나 바깥세상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되면서부터 고민이 싹텄습니다. 북한사회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씨는 결국 하나 뿐인 자식은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가족을 데리고 사선을 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철호1] “애가 그 때 당시 여기로 말하면 어린이집 유치원생이었어요. 걔를 늘 6살 정도까지 키우면서 저희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는데 애만이라도 보다 넓은 세상을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츰차츰 싹이 자라났구요 그걸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탈북자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 입니다. 당시 탈북자들은 거듭된 홍수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한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말 그대로 굶어 죽지 않으려고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는 상당수 탈북자들이 ‘체제 불만’이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처벌에 대한 우려’때문에 북한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탈북 동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북한사회에 바깥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전자기기들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휴대전화와 CD, 대북방송 등을 통해 한국 드라마도 보고 바깥세상 뉴스도 듣게 되면서 그동안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됐습니다.

발각되면 처벌받아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러한 정보들을 몰래 보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가혹한 통제와 가난에서 벗어나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용화 인권조사팀장입니다.

[용화1] “탈북의 요인이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녀교육, 그리고 정치적 자유, 그리고 먼저 온 가족들의 독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많이 오고 있구요, 특히 외부 방송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고 CD 등 외부정보 매체를 통해서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먹는 문제가 절박했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 수는 많아야 한 해 1백48 명이었고, 탈북자 수가 한 해 1천 명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2002년, 그리고 2천 명선을 넘은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이처럼 2000년대 들어서 탈북자들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외부사회의 정보가 주민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대북 전단 보내기 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북 풍선단 이민복 대표입니다.

[민복1] “그전에야 북한 당국의 선전대로 남한에 가면 비밀 뽑고 다 죽인다, 이렇게 우리는 세뇌받고 있었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남한에 오는 사람이 2만 명이니까 중국 전화기를 통해서 그 소식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단계는 지났죠.”

자식에겐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마저 생기면서 탈북 양상 또한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와야 하는 위험성 때문에 처음엔 혼자 북한을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가족이 함께 나오는 탈북이 크게 늘어 전체의 40%에 이릅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김영자 사무국장입니다.

[영자1] “이제는 탈북 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가족을 다시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그런 일들을 계속하고 있죠. 북한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 때 예를 들면 전화를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예전에는 혼자만 도망을 나왔는데 이제는 가족단위로 도망을 나와서 살 길을 함께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남아있는 가족들의 고초가 얼마나 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성 탈북자의 수가 급증한 것도 새로운 현상입니다. 여성 탈북자 비율은 2000년까지만 해도 절반도 안됐지만 2007년부터는 70%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직장에 얽매여 있는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북한 내에서 이동이 수월하고 중국으로 탈출한 뒤 가사 도우미 등 생계 수단을 갖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여성 탈북자들 가운데 중국이나 제3국을 거치면서 아이를 낳고 한국으로 올 때 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 아이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기도 해 한국사회에서적응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 인권정보센터 이용화 팀장은 말했습니다.

[용화2] “제가 최근에 만났던 아이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한국말은 거의 못하고 중국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정착 과정에서 같은 또래와의 의사소통이 안 될 가능성이 상당히 많고, 결과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 수는 지난 1950년 첫 귀순자가 나오면서 한국 정부가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지난 달인 10월 초 현재 1만9천7백 여 명입니다.

북-중 접경지역의 단속이 크게 강화되고 이에 따라 탈북을 돕는 일명 브로커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많이 올라 탈북 움직임이 최근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통신수단의 발달 등으로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갈수록 빈번해질 수밖에 없는 추세에 비춰 한국사회로의 탈북자 급증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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