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북한의 임수경 팬들, 실망 클 것"


북한에서 제작된 임수경 포스터.

북한에서 제작된 임수경 포스터.

북한에서 ‘통일의 꽃’으로 불리는 임수경 한국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의 탈북자에 대한 막말 파문이 한국에서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평양 출신의 고위 탈북자들은 과거 북한 청년들에게 자유롭고 당찬 발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임 의원의 발언에 북한 주민들도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아나운서] “지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폭풍 같은 만세의 환호가 울리는 가운데 남조선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대협 100만 학도의 혈육의 정을 한 몸에 안고 평양 축전장에 달려온 서울의 외국어대학교 림수경 학생. 장하다 100만 학도의 자랑스런 대표여….”

지난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흰색 티셔츠를 입은 단발머리의 한국 여대생 임수경 씨가 붉은 화술을 흔들며 거리행진에 나서자 평양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당시 김일성대학 학생으로 임수경 씨를 가까이에서 지켜 본 한 고위 탈북자는 ‘미국의 소리’ 방송에, 임수경 씨의 모습은 자신과 친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위 탈북자] “평양에 있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이 임수경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좋아한 이유가 뭐냐면 당차게 평양에 왔다는 것. 그러니까 한국 대학생이 저렇게 밝고 저렇게 당돌할까, 저렇게 자유로울까, 그 어떤 자기가 바라고 있는, 원하는 행위를 거리낌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대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죠.”

임수경 씨는 청년들의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인터넷 매체인 `뉴 포커스’ 대표인 북한 통전부 출신 탈북자 장진성 씨는 당시 북한 당국이 임수경 씨의 대담한 행동에 우려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진성 대표] “제가 통전부에 들어가고 나서 아무래도 임수경 씨에 관심이 많아 통전부 간부들에게 슬쩍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간부들은 이렇게 와서 체제선전용으로는 활용이 돼 좋았는데, 점차 일반 사람들과 섞여 놓으니까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뭐냐 했더니 자유민주주의적 발상으로 무엇이든 말하고 무엇이든 행동하는 자유로움이 북한에서 딱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북한 대학생들에게는 남한에 대해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졌다는 거죠. 그래서 통전부에서 안되겠다 해서 극히 선별된 대학생들로 임수경을 동행하는 동행조로 만들었다고 해요.”

평양 출신 탈북자들은 당시 임수경 씨의 바지와 티셔츠, 말씨, 행동이 북한 청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단속 대상이 될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임수경 씨는 이후 40일 이상 북한에 머물며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고,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귀환한 후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장진성 대표는 당시 임수경 씨의 판문점 귀환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진성 대표] “북한 주민들이 임수경 씨가 남한으로 돌아갈 때 (TV가) 생중계를 했는데 그걸 보며 정말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어요. 왜 울었냐면 자기들처럼 생각해서 한국으로 가면 3대 멸족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걱정과 아픔으로 막 울었던 주민들이었거든요. 이건 뭐냐 하면 북한 주민들이 그 만큼 3대 멸족의 공포 속에서 산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거예요.”

당시 임수경 씨를 가까이에서 지켜 본 고위 탈북자는 임 씨에 대한 우려보다 북한 대학생들이 한국사회의 관용에 대해 배우는 학습효과가 더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위 탈북자] “판문점을 통해 넘어가기 때문에 아 저 사회는 저게 용납이 되는구나. 자유세계는 본인 중심이고 보다 더 관대하구나, 그걸 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이지만 (남한의) 비전향 장기수들도 살아서 북한에 가지 않았어요?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하죠. 감옥에 30년씩 있으며 생존할 수 없죠, 북한에서는. 그런 것을 보면서 남북의 차이를 아는 거죠.”

임수경 씨는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5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1992년 40개월만에 가석방됐습니다. 이후 남북교류와 통일운동,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을 벌여왔습니다.

임수경 씨는 지난 4월 치러진 총선거에서 야당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1번으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임 의원은 당선 후 가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89년 이후 북한을 네 번 더 방문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국 CBS 김미화의 여러분]

진행자: “북한 주민들도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임수경 의원: “그렇죠. 그분들이 직접 만나봤던 기억 속에 있던 유일한 남한 사람일 수도 있죠. 제가 89년 이후의 임수경으로 박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후에 네 차례 더 방북해서 8.15 남북공동행사나 방송위원회 남북교류 추진위원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왔어요. 그러면서 북녘의 주민들을 계속 만났었죠.”

탈북자들은 임수경 의원이 지금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합니다. 북한 통전부 출신 장진성 대표의 말입니다.

[녹취: 장진성 대표]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안부를 묻는 이름이 바로 임수경입니다. 북한에서 처음 봤던 한국인이었고 그런 임수경의 상처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직까지도 임수경에 대한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탈북자들인데 그들에게 배신자라고 말했다는 것은 과연 배신의 기준이 무엇인가 했을 때는 임수경 씨가 많이 실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수경 의원은 최근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탈북 대학생과 실랑이가 벌어지자 “탈북자가 국회의원한테 개기느냐, 대한민국에 왔으면 닥치고 조용히 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에 휩싸였습니다. 임 의원은 논란이 커지자 보도자료를 낸 뒤 4일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사과했습니다.

[녹취:임수경 의원] “이번 일을 계기로 말과 행동을 더욱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보수 시민단체, 탈북자 단체들은 연이어 성명을 내며 임수경 의원이 보다 진실하게 사과와 해명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문이 일기 전까지 임수경 의원이 팬이었다는 고위 탈북자는 실망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북한 청년들은 임수경 의원이 북한 체제를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롭고 당찬 모습 때문에 좋아했다는 겁니다.

이 탈북자는 당시의 청년들이 지금 북한에서 어떤 권리를 유린 당하고 사는지 임 의원이 안다면 자신의 실언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고위 탈북자] “자신이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북한 하고 거기에 몸담고 사는 개개인들, 자기와 같이 호흡했던 대학생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나와 같은 지식인들이 과연 임수경 씨가 지금과 같은 사고와 생각을 할 때, 북한의 주민들을 그렇게 대했을 때, 그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임 의원을) 대할까.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세상이 바뀌었을 때 어떻게 그런 질문들에 자기가 대답을 해줄까 좀 신중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임수경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북한 이탈주민들이 잘 정착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미국의 소리 김영권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