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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파견 북한 건설 근로자들 노동 착취 심각해”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건설 근로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임금 착취가 매우 심각하다고 최근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말했습니다. 건설 근로자 출신으로는 미국에 첫 입국한 이 탈북자들은 벌목공에 비해 자유가 많은 근로자들 사이에 북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 파견 북한 건설 근로자 출신인 탈북자 조모 씨와 이모 씨는 각각 지난 달과 이달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중앙아시아 K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민 보호를 요청한 지 1년 여 만에 난민 지위를 받아 영국 런던을 경유하는 30시간의 긴 비행 끝에 미 중서부의 한 도시에 정착한 겁니다.

40대 후반의 두 탈북자는 모두 노동 착취에 따른 임금 문제가 작업장을 이탈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이 씨의 말입니다.

“기본이 돈 문제였죠. 돈 문제! 하다 못해 월급은 적고, 돈을 (북한 가족에) 보내야 하는데 돈을 보내지 못하니 정작에는 기렇게 되는 거죠. 저는 한 달에 50불을 받았습니다.”

북한 정부가 임금의 60퍼센트 이상을 가져간 뒤 손에 쥔 액수는 미화 50달러.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이마저도 저축할 수 없었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식비와) 당비 제끼고 그 다음에 김정일 장군의 만수무강을 위한 보약을 산다. 철갑상어니 푸른 상어알을 산다. 곰 발톱을 산다. 1인당 돈을 거기다 내야 합니다. (불만이) 너무나도 많죠. 말도 못해요”

지방 출신으로 2000년대 초 러시아에 파견된 이 씨는 당시 5년 간 3-4천 달러를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3-4천 불을 벌어서 (고향에) 가져가는 게 꿈이었어요. 3천 4천이면 마누라가 장사하면서 그 돈을 까먹지 않고 먹고 살면서 그 돈을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그 돈이면 나한테는 충분한 돈이었죠. 그 것마저 실현 못 시켰어요. 마누라와 자식한테 죄를 진 거예요.”

1990년대 말에 작업장을 이탈했다는 또 다른 탈북자 조 씨는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1백 달러에서 3-4백 달러, 일부는 7백 달러 이상까지 다양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어쨌거나 60 프로를 떼 갑니다. 계약 자체가 러시안들보다 50프로, 반값을 받고 우리가 일하니까. 똑같이 일하면서도. 어떤 때는 1백 불이 되고 어떤 때는 4-5백 불도 되고 여러 가지예요. 직급마다 다 다르거든요. 일하는 사람마다.”

매달 월급의 편차가 심했지만 돈을 제대로 저축할 수준은 못됐다는 겁니다.

러시아 현지 소식통들은 북한 건설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이 계약 내용과 숙련 정도,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블라디보스톡의 대표적 건설업체 가운데 하나인 A사의 고려인 2세 사장은 ‘미국의 소리’ 방송에 북한 근로자 1인 당 1천 달러의 월급을 지급했다고 말합니다.

“북한 사람들 160명 썼어요. 그 것도 인테리어 할 때, 그 사람들 미장만 잘하고 석고보드나 전기 같은 것은 못하고. 북한 사람들은 원래 한 달에 1천 불 정도 줘야 돼. 왜? 북한 사람들은 6백 불을 자기 나라에 갖다 줘야 돼. 원래 북한 사람들이 일 잘 못하는 게 아니구 그런 기술이 자기 북한에 없으니까….”

탈북자 이 씨는 임금 착취 뿐아니라 평양 출신과 지방 출신 근로자들에 대한 간부들의 차별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합니다.

“책임자들이, 소장이나 당 비서가 모두 평양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네 평양 애들은, 따로 나가서 청부업을 하는 데는 다 평양 애들을 내보내는 거예요. 청부업 나가서 일하게 되면 계약금 바치고. (북한)회사에 내는 계약금이 있거든요. 1백 불에서 1백 50 불. 나가서 그것만 받치고 나면, 그 사람은 먹을 것 다 먹고 계약금 바치고 한 5백 불은 자기 손에 들어오거든요.”

평양 출신의 간부와 근로자들이 목돈을 챙길 수 있는 청부업은 서로 나누며 뒷돈을 챙기고 지방 출신들은 추운 겨울에만 청부업 기회를 주는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겁니다.

두 탈북자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일부 러시아인 업자들이 야간이나 주말에 일감을 따로 제공해 그나마 돈을 조금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건설 근로자들이 벌목공들에 비해 자유가 많은 만큼 당국의 감시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이탈자를 체포해 본국으로 송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이 씨는 말했습니다.

“자유시간 받게 되면 시내도 다녔고, 일감도 찾아볼까 해서 다니고, 현지인들하고 대상도 많이 하고. 하니까 더 위험인물로 취급하죠. 달아나게 되면. 왜냐하면 북한의 현실과 자본주의 현실을 체험한 사람들이니까.”

러시아 건설업체의 불황으로 대형 계약이 줄어들자, 책임자들이 지정된 할당금액을 채우기 위해 근로자들에게 현지인 주택 보수와 수리 등 일감을 찾아 나설 것을 강요하면서 자유가 많이 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조 씨와 이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이탈자들이 러시아에 적지 않다며, 그러나 어떻게 미국이나 한국으로 갈 수 있는지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어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러시아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 등을 청취한 게 정보 습득과 북한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사회교육방송과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었죠. 그러면서 (정부에) 반감을 가진 거죠.”

일부 나라들은 지난 해 12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실시한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 에서 북한 정부의 노동 착취 문제를 지적하며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임금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며,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이른바 노동 3권을 국제법에 따라 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 정부는 그러나 노동권이 공정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ILO 에 가입할 뜻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한편, 미 중서부의 난민정착 지원기관에서 영어와 미국 생활법을 배우고 있는 탈북자 조 씨와 이 씨는 앞으로 미국에서 건설업종 등에 종사하며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넉넉하게 송금하고 싶고, 가능하면 미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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