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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북한 채권 – 1. 역사와 특징


북한 문제는 군사외교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국제투자자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중시하기 때문인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방송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독특한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북한 채권을 주제로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북한 채권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달 말 한국 정부 대표단이 싱가포르에서 국제 신용평가사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험이 높아졌다는 국제금융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가져올 경제적 충격을 걱정하고 있는 동안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 채권에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특정 국가와 연결된 채권은 해당 국가의 정부에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북한 채권은 정반대입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라는 대사건이 벌어지자 채권값은 오히려 올랐습니다. 이런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건 북한 채권의 발행자가 북한 정부가 아닌 국제 채권단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 70년대 외국 은행들로부터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빌렸지만 제때 갚지 못하다 결국 1984년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뒤 북한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외국 금융기관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돈을 떼인 은행들은 10년 넘게 손해만 보다1997년 받을 돈 절반 가량을 채권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북한 측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권리를 헐값에 남에게 넘겨준 겁니다. 북한이 돈 갚기를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큰 손해를 보더라도 빌려준 돈의 일부나마 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채권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적은 돈을 들이고 큰 이익을 볼 기회를 잡았습니다.

북한 채권의 거래를 대행하고 있는 영국 금융중개회사 이그조틱스 (Exotix)의 스튜어트 컬버하우스 수석 조사역입니다.

[녹취: 스튜어트 컬버하우스, 이그조틱스 수석 조사역] “There is a hope...”

북한이 언젠가 개혁개방에 나서 일부라도 빚을 갚거나 남북통일이 돼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대외채무를 대신 갚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자자들이 북한 채권을 구입하고 있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헐값에 채권을 샀기 때문에 북한이 일부만 빚을 갚더라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컬버하우스 조사역에 따르면 원금과 함께 20년 넘게 못받은 이자까지 합하면 투자금액의 10배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언제 그런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돈을 묻어놓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북한 채권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채권은 만기 때까지 정기적으로 이자를 받지만 북한 채권은 말그대로 ‘돈을 돌려받을 권리’를 증명하는 증서이기 때문에 중간에 받는 이자는 없습니다.

지난 2010년 한 번 만기가 도래했지만 이는 북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세운 서류상 회사의 활동기한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날은 아니었습니다. 북한 채권의 만기는 오는2020년까지 연장된 상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장기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과 유럽의 중대형 연기금이나 민간 투자기금들이 주로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기금들에 대해서는 10여개 정도라는 사실만 알려졌었는데, 최근 미국의 채권거래 전문기금인 플랭클린 템플턴이 액면가 4백20만 달러 상당의 북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그조틱스의 스튜어트 컬버하우스 수석 조사역입니다.

[녹취: 스튜어트 컬버하우스, 이그조틱스 수석 조사역] “Frequency varies...”

북한 채권의 거래금액은 보통 2~3백만 달러 단위로 이뤄지고 있고, 많을 경우 일주일에 두 세번 거래가 있지만, 적을 때는 몇 주 동안 거래가 뜸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거래는 주로 한반도에 중대한 정치, 군사적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이 이뤄지고 있고 가격도 이에 따라 변하는 특징을 보여왔습니다.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거나 북한 핵 문제에 큰 진전이 있을 경우 그만큼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채권값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 극심한 식량난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처럼 북한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는 변수가 발생할 경우에도 채권값이 올랐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판단한 겁니다.

반대로 북한의 군사도발처럼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건이 터지면 거래도 얼어붙고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너무 많다보니 북한 채권에서 손을 떼는 투자회사도 생겨났습니다. 덴마크의 투자기금인 글로벌 이볼루션(Global Evolution)도 초창기 북한 채권 거래에 참여했지만 10여년 전에 보유물량을 모두 팔고 지금은 거래동향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모턴 부게 투자관리 본부장입니다.

[녹취: 모턴 부게, 글로벌 이볼루션 투자관리 본부장] “I do think...”

부게 본부장은 북한의 불확실한 미래를 감안할 때 북한 채권값이 아직도 너무 높다고 말했습니다. 언제 북한이 돈을 갚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돈을 북한 채권에 묻어 두는 건 위험한 투자라는 설명입니다.

부게 본부장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를 하고 싶다면 다른 채권도 얼마든지 많다며, 굳이 비싼 북한 채권을 살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뉴욕의 한 채권거래 대행사 임원은 북한 채권의 가격보다는 수익률에 관심을 두는 투자자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격 수준에 상관없이 값이 올랐을 때 팔기만 하면 일정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을 예측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한계는 있습니다. 현재 북한 채권 가격은 액면가 1달러 당 10센트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 김연호입니다.

진행자: 북한 채권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에 대해 알아보는 기획보도, 내일 이시간에는 북한 채권의 거래 동향과 전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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