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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특집: 탈북 난민들의 감사 이야기


미국인들은 지금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가족과 친척,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감사했던 일들을 나누고 화목을 다지는 명절인데요. 생사의 고비를 넘어 이역만리 미국 땅에 정착한 120여명의 탈북 난민들 역시 감사한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탈북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미국 내 20여개 도시에 흩어져 사는 탈북 난민들. 출신지와 정착 경위 그리고 환경이 서로 다른 만큼 감사의 내용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미 북서부의 한 도시에서 남편과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레이스 씨는 매상이 계속 올라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매일 매일 일어나면 엄청 감사해요. 지금까지 매상도 잘 올랐고 열심히 해서 매상이 올랐고 꾸준하게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건강지켜주시는 것 감사해요. 그냥 매일매일 소소하게 감사해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개업한 세탁소에 온 가족이 최선을 다해 일한 결과 모든 것이 안정돼 가고 집도 살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해피 땡스 기빙입니다. 해피 땡스기빙 하하하!”

씩씩하게 추수감사절 인사를 하는 중서부의 제프리 김 씨는 낮에는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밤에 영어를 공부하는 성실한 청년입니다. 미국에 온지 3년이 되어 가는데 김 씨는 아직도 미국을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감사한 일 다 표현 못하겠어요.제가 행복하니까. 절 행복하게 해 주는 모든 분들. 친구들이 있어서 밥도 같이 먹구. 여기가 천국인데 더 말할 게 있어요?”

김 씨는 특히 주위에 북한에서 온 젊은이들이 있어 외로움을 달랠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한 의류회사에서 일하는 40대의 최한나 씨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최 씨는 자신의 삶 자체가 감사의 찬양이라며 흥겹게 노래를 부릅니다.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보면서 감사하세요. 힘들때면 이 찬양이 절로 나와요. 그리고 슬프다고 슬픔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고 정말 가사처럼 이 고난을 겪고 나면 또 어떤 축복이 올까 하는 그런 진심을 갖게 되고.”

미 남부지역에 살고 있는 40대의 로버트 정 씨는 미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저 추수 감사절 쭉 보면 야 그래도 이 미국에서 너무 감사해요. 미국 정부도 감사하구, 또 미국의 인권단체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탈북 난민들을 그래도 조금 안 좋은 점 많아도 잘 포옹해 주고 그저 미국에 감사해요 첫째로”

정 씨는 아내와 아들이 올해 미국에 입국한 데 이어 다음 달에는 동남아시아에 대기중인 두 딸이 들어오게 돼 더욱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갸네가 거기서 영어공부를 많이 해서 감사해요. 선생님들이 영어 수업을 아주 많이 시켜서 막내 딸 같은 경우는 영어로 미국 사람들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데 너무 감사해요.”

미국 생활 3년째인 워싱턴주의 제인 씨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자꾸 북한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거기 있었으면 사는 게 정말 사는게 뭔지도 모르잖아요. 오늘 하루 세끼 먹고 사는 게 그게 걱정이었구. 하루 한끼 먹었으면 그게 기쁨이었고 이랬었는데 지금은 나를 위해 내가 뭔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자꾸 비교가 되니까.거긴 굶주리는 사람들이 엄청 많잖아요.”

낮에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제인 씨는 명절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철이 들고 하니까 아 그 때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요. 명절이 되면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 색다른 음식 해주고 싶은데 그 거 못해주셔서 항상 가슴 아파하고 그 거 해주려고 막 노력하구”

2년 전 미국에 정착한 남편의 도움으로 올해 1월 아들과 함께 미국에 입국한 메리 씨는 신나게 학교가는 아들을 볼 때마다 너무 흐뭇하다고 말합니다.

“아들을 교육하면서리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아침마다 학교 갈 때마다 버스가 떡 와서 갈 때마다 야 참 좋구나. 북한에 있으면 뭐이 될까?”

북한의 학교 환경은 너무도 달라 비교 자체가 힘들다는 겁니다.

“학교 교육이란게 북한은 막연하거든요. 한심하죠. 북한은 아이들이 나라의 왕이라고 구호는 있거든요. 김정일의 구호가. 그거는 말 뿐이죠. 아이들은 책가방보다 농촌가서 밭을 뜯는 게 기본이거든요. 오후는 화초줍기, 농촌동원 비료할라 뭐 헤메다니죠. 근데 여기와 보니까나 참 눈물나게. 어린이들을 존중해 주고 지나가면 가던 차 다 서고 이러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메리 씨는 지난 1월 미국 입국직후 가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 때만 해도 미국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메리 씨 목소리입니다.

“너무 심장이 떨려서 말이 안 나갑니다. 미국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파악이 없습니다. 고저 남편을 만나 가정을 합치려고 왔지. 기쁘다고 말해야 좋은건지 그저 감정이 그렇습니다.

메리 씨는 그 때 왜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지 부끄럽다며 지금은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10 명 정도 낳고 싶다고 말합니다.

“태국에 있을 때도 미국이란 개념이 좋은 감정보다 나쁜 감정이 많았거든요. 우리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돼 있거든 교육을 그렇게 받았으니까나. 미국에 와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근심이 80-90 퍼센트 됐는데, 와 보니까 야 참 이런 나라도 있는가 정말 아이들 교육이.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이만 젊었으면 아이들 열이나 났으면 좋겠슴다.(웃음) 너무도 욕심이 아들 학교가는 거 보면 야 너 얼마나 감사하냐. 너처럼 복받은 아이는 있는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부라 그러죠.”

메리 씨는 그러면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에게 꼭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당부했습니다.

“알릴 수만 있으면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참 정치란 게 그렇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관계없죠. 백성이 안정되게 무난하게 정착을 잘하는 게 기본이죠. 누가 무슨 정치하든 간에. 백성을 배부르게 먹여주고 안정된 가정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게 기본이죠. 그게 없으면 무슨. 제 노력하면 대가가 있는 데가 미국아닙니까?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북한 같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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