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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 “북한, 핵실험으로 외교적 대가 치러”


재임 중 임진각에서 북한지역을 건너다보는 존 틸럴리 사령관 (우)

재임 중 임진각에서 북한지역을 건너다보는 존 틸럴리 사령관 (우)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전직 주한미군 사령관들로부터 재임 당시의 한반도 안보 상황과 개인적 소회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존 틸럴리 전 사령관과의 인터뷰를 전해 드립니다. 틸럴리 사령관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해 유엔군사령관 겸 미한연합사 사령관을 지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문) 틸럴리 전 사령관님, 안녕하십니까? 사령관님께서는 지난 1996년에서 1997년 당시 북한 정권의 붕괴 등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제의해 게리 럭 전 사령관 시절인 1999년 수립됐는데요. 당시 계획 수립의 근거가 됐던 가정이 얼마나 유효했다고 보십니까?

답) 개념계획을 세울 때 가정하는 시나리오는 무엇보다 상황에 대한 주한미군사령관의 임무와 책임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다 고려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미-한 연합군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죠. 따라서 당시 세웠던 개념계획이 얼마나 유효했는가 보다는 책임을 갖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작전을 세웠는가가 중요한 겁니다. 하지만 1999년 세웠던 계획은 당시에 유효했고 미-한 연합군이 북한과 관련한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계획됐습니다.

문) 당시 세웠던 계획이 유효했다는 말씀은 곧 사령관계서도 당시 북한이 곧 붕괴될 것으로 간주하셨다는 건가요?

답) 시나리오를 세울 때 주변에서 제기돼 온 특정 사안 발생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둔 겁니다. 정확한 붕괴 시점을 예측하기 보다는요.

문) 미한연합사가 2004년에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2005년 당시 한국의 참여정부가 주권 제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군이 작전계획에 따라 북한 지역을 관할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었는데요. 근거가 있는 논리입니까?

답) 제가 한국의 특정 정권의 결정을 평가하거나 비판할 위치에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는 계획은 매우 신중한 고려 끝에 나온 결정이었습니다. 주권을 제약하거나 도발적인 측면이 있지 않았단 말입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도발적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협조해 한반도 안정을 이루기 위한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고려했던 개념계획들이 절대 도발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계획들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것이고 만약의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대비하도록 해 줍니다.

문) 당시 북한의 위협에 대해 “불확실성의 변수와 군사력으로 미뤄볼 때 상당하다”고 분석하셨습니다. 6.25 전쟁 휴전 이래 가장 불안정하다고도 진단하셨구요.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북한의 위협, 당시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답)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천안함 폭침, 연평도 공격 등을 고려할 때 그 위협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북한의 이런 행태,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기를 꺼리는 모습을 보면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 1999년 당시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도됐거든요.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등 북한에 대한 꾸준한 유화적 태도로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노력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대북정책 기조를 바꾼 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답) 저는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했던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건 서로 소통하는 게 위기로 치닫는 것보다 언제나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과 동아시아가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대화와 소통을 통해 논의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는 겁니다. 동시에 대화를 진행할 때는 상대와 맞설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미-한 연합군은 따라서 늘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매우 적절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안정화 방안에 대해 미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전적으로 지지를 보냅니다.

문) 그럼 중립적으로 당시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북한은 언제나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걸 얻어내려고만 할 뿐 정작 자신들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정책을 세울 땐 서로 주고 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정책이든 펼칠 가치가 있습니다. 그 정책이 더 이상 한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때까지 말이죠. 따라서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아니면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고만 말하겠습니다.

문) 사령관께서는 1999년에 “북한이 만일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아주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북한이 누리고 있는 외교와 경제적 혜택을 모두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북한은 이후 여러 차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심지어 핵실험까지 감행했는데요. 과연 북한이 어떤 대가를 치른 겁니까?

답)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평판과 관련해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사회에서 무법자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요. 국제사회는 북한이 도발 행위와 핵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은 큰 외교적 대가를 치른 겁니다. 보다 현실적 측면을 봐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가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천안함과 연평도 공격 이후 더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치른 대가는 손에 잡히는 부분 보다는 국가의 평판과 관련된 국제적 차원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대가라고 하면 군사적 대가를 연상하는 데 파괴가 따르는 군사 공격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합니다.

문) 북한이 치렀다고 지금 말씀하신 그 대가는 그러면 충분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답)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네요. 제가 그걸 측정하긴 힘듭니다. 지금 정부에 소속돼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이 치러야 할 대가와 관련한 정치적, 외교적 결과도 알지 못합니다. 정말 말하기 어렵습니다.

문) 주한미군사령관으로 3년5개월을 복무하신 장수 사령관이셨습니다. 1996년 7월9일 부임해 1999년 8월 퇴임할 예정이었는데 윌리엄 코언 당시 미 국방장관의 요청으로 퇴임 시기를 1999년 12월까지 연장했거든요.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답) 전 한국인과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한국이 원하는 기간만큼 최대한 오랫동안 한국에서 복무하길 바랬습니다. 마침 코언 국방장관의 요청도 있었고 내 의무를 다 하는 차원에서, 또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 좋았기 때문에 연장 복무한 겁니다.

문) 한국에 주둔하시는 동안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의 정권교체를 겪었는데 그 기간에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미군과의 협조 차원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답) 주한미군과 한국의 협조 부분만 제가 언급할 수 있겠네요. 양측의 군사동맹 관계는 언제나 공고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그 점만큼은 그 두 정권 하에서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있는 동안 한국 국방장관 등 군 지휘부와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당시 정권이 바뀌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순조로운 변화를 겪은 걸로 기억합니다.

문) 사령관께선 당시 미한연합사를 산소와 수소로 이뤄진 물에 비유하셨거든요. 노무현 정권 시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을 지켜보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걸로 아는 데 어떤 뜻이셨나요?

답) 그 말은 “같이 갑시다”라는 한국말로 표현하겠습니다. 물을 만들기 위해 산소와 수소가 필요한 것처럼 미-한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두 가지는 미-한 군사동맹, 그리고 밀접한 양국관계입니다. 특히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산소와 수소가 물을 만들 듯 어느 하나도 튼튼한 미-한 관계에 빠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

문) 지난 해 미 외교협회와 함께 한반도 주요 현안에 대한 정책보고서를 내셨더군요. 특히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가 눈에 띄는데요. 당시 2012년 4월로 예정됐던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해 핵심적인 기준은 시한이 아니라 여건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셨던데요. 어떤 뜻이었나요?

답) 전작권 문제와 같은 중대한 변화를 결정할 때는 임의로 특정 시점을 정하기 보다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신축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날짜 저 날짜 고르듯이 이양 시기를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전작권 이양 시기가 2012년 4월로 예정된 뒤에 북한은 또 다시 도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전작권 이양 시기를 늦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 그렇게 전작권 이양 시기가 늦춰진 데 대해 만족하시나요?

답) 예. 한반도 안보환경과 북한의 태도에 따라 그런 결정이 내려진 만큼 만족합니다.

문) 1998년에 큰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죠.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이 발생했고, 불과 20일 만에 또다시 무장간첩 침투 사건이 발생했었는데요. 당시 상황이 어땠고 주한미군은 어떤 대응을 했었는지 말씀해 주시죠.

답) 당시 주한미군과 한국 국방장관 등 군 지휘부가 긴밀히 협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군은 당시 한국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필요한 시점에 제공했습니다. 주한미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잠수함 사건이나 스파이 사건이 또 다른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문) 그 때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다고 판단하신 거죠?

답) 상당히 심각한 도발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전협정 위반이었구요. 북한 정권은 지속적으로 정전협정을 어겼습니다. 어떤 위반이든 심각합니다. 그게 어떤 상황으로 발전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상황을 분석하고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예측이 어려우니까요. 그 사건도 다른 북한의 도발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문) 통일 후 주한미군의 비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죠?

답)우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통일 후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양국이 활발히 논의할 수 있길 바랍니다. 현재, 그리고 통일 후 미군의 역할을 결정할 수 있는 당사자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협력 관계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굳건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미군의 주둔 가치를 평가해 줬으면 하구요. 끝으로 미-한 동맹은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독특하고도 본보기가 되는 협력 관계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전례 없이 훌륭한 사례입니다. 한국말로 다시 “같이 갑시다”를 강조하겠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동반자로서 같이 같으면 좋겠습니다.

문) 틸럴리 전 사령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진행자) `미국의 소리’ 방송이 이틀에 걸쳐 보내드린 전직 주한미군사령관과의 인터뷰, 존 틸럴리 전 사령관 편을 들으셨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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