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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량난 특집 II] “북한, 농업개혁으로 식량난 타개해야”


[북한 식량난 특집 II] “북한, 농업개혁으로 식량난 타개해야”
[북한 식량난 특집 II] “북한, 농업개혁으로 식량난 타개해야”

북한은 올해도 어김없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해 저조한 작황으로 1백만t 이상의 식량이 부족한데다 국제사회의 원조마저 크게 줄어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북한 식량난의 실태와 원인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특집기획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매년 거듭되는 식량난의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돼 온 만성적인 현상입니다. 국제사회는 1995년부터 최근까지 북한에 1천2백만t이 넘는 식량을 지원했고, 유엔은 북한을 세계에서 식량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를 전후로 한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를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민간단체인 ‘오클랜드연구소’의 크리스틴 안 연구원은 북한이 과거 “소련이 제공하는 석유에 크게 의존하면서 석유집약적인 농업체제가 형성됐다”고 말했습니다. 트랙터 등 농기구 연료 뿐아니라 화학비료의 원료로 석유를 많이 썼는데, 사회주의 경제권이 해체되자 석유를 들여올 수 없어 농업체계가 붕괴됐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2년부터 북한을 방문해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의 티어도어 프리드리히 곡물 생산체계 연구원도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와 함께 북한이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거듭되면서 경작지가 유실되고 토질이 악화돼 생산량이 더욱 줄었다”고 프리드리히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해당 기간의 수확량이 떨어질 뿐 아니라, 경작 환경이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당면한 식량난 속에 북한의 토질은 계속 산성화 됐습니다.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출신의 탈북자 이민복 씨입니다.

이민복: “식량이 급하니까 연작이라고 하죠. 매해 같은 작물을 계속 반복해 심거든요. 옥수수를 많이 심는데 옥수수가 수확량이 많이 나는 만큼 토양 착취율이 가장 높아요. 그러면 콩이나 그루바꿈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루바꿈을 한다면 당장 옥수수 식량 생산량이 줄어드는 거죠. 악순환 구조 속에 있어요.”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에 환경친화적인 보존농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티어도어 프리드리히 FAO 곡물 생산체계 연구원은 “보존농법은 쟁기질을 하지 않아 연료가 덜 들고, 토양 구조를 강화하기 때문에 비료를 덜 투입하고도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FAO가 지난 2002년부터 북한에 소개한 보존농법은 비료 대신 논밭에 작물 그루터기를 남겨 분해시키고, 토양의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미생물 층을 파괴하지 않도록 쟁기질을 피하는 친환경 농법입니다. 프리드리히 연구원은 “최근 들어 북한 농업정책에서 보존농법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외에 비정부기구인 아일랜드의 컨선, 캐나다의 메모나이트 중앙위원회 등도 북한에서 보존농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북한 농업의 생산성을 강화하려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농업개혁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적 집단영농체제 하에서는 농민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부족해 생산성이 저하되고, 따라서 자연재해나 경제난과 상관없이 북한의 식량 부족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 김운근 박사입니다.

김운근: “내가 내 땅에서 농사 짓는 것 하고, 국가 땅에서 농사 지었을 때 열심히 하겠어요? 노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거기 가보면. 농촌에서 배급 받잖아요. 열심히 하던 안 하던 배급이 나오니까.”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출신인 탈북자 이민복 씨도 같은 견해입니다.

이민복: “열심히 하면 내 것이 돼야 하는데 다 국가가 가져가니 누가 열심히 하겠습니까? 제가 탈북할 때 개인농과 집단농 실험을 해봤어요. 생산량이 5배 내지 10배 이상 차이가 나요. 내 것이 될 때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제개발처 USAID 처장을 지낸 앤드루 나치오스 조지타운대학 교수는 북한이 1970년대 말 중국의 덩샤오핑이 단행한 농업개혁 정책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교수는 “현재 북한 정부 당국은 전국의 모든 농장들에 무엇을 재배할지 일일이 지시하지만, 중국은 기존의 농업체제 안에서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주고 투자와 시장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오스 교수는 중국 정부가 비효율적인 대규모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진행하자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기적을 이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승포제를 실시해 국가가 할당한 일정량 이상을 수확하면 각 농가가 자체적으로 시장에서 나머지를 처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같이 계획경제에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하자, 중국의 농가 소득은 1978년에서 1984년 사이에 평균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안찬일 소장입니다.

안찬일: “여러 가지 지원 노력에 의한 영농, 학생들 군인들을 동원해서 알곡 수확을 높이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서 뭔가 혁명적인 발상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1996년부터 북한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펼쳐 온 빅터 슈 전 ‘월드 비전’ 국장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는 내부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면서, 현재 북한 당국이 국제 구호단체들과 지식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습니다.

슈 전 국장은 “북한 당국자들이 국제 단체들과의 경험에 비춰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 당국자들의 해외 견학과 교류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지난 15년 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오직 북한 당국과 주민들이 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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