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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산가족들, “ 명절 때면 고향 생각 더 절실”


이산가족 상봉현장 (자료사진)

이산가족 상봉현장 (자료사진)

내일 (3일)은 한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인 설날입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이나 가족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하지만 60년이 지나도록 가보지 못하고 꿈 속에서만 고향을 그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우리 고향은 북위 42도쯤, 그러니까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사이 가까이에 있는 바다니까 어선을 타고 피난민과 함께 나왔죠. 그러니까 고향을 떠난 지가 60년을 넘었네요.”

함경북도 이원이 고향인 차원태 목사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당시 17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차 목사는 남아 있으면 전쟁터에 끌려 갈 것을 우려해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놔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것이 영원한 이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 70살을 훌쩍 넘기고 80 살을 바라보는 차 목사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신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글을 쓰고 가끔씩은 강의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차 목사는 이제 고향을 떠난 지 60년이 지나 고향 생각이 덜 난다면서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가 되면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향의 친구들 생각도 나고… 늘 꿈 속에서도 지금도 고향에 가는 거죠. 60년 전의 소박했던 모습들이 떠오르는 거죠.”

차 목사는 지금까지 고향에 가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소식도 영영 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떠났을 부모의 기일도 알지 못한다는 차 목사는 이제는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꿈을 접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이름으로 단 며칠 만나고 난 후 다시 긴 이별을 해야 하고, 북쪽 가족의 소식을 듣는다고 해도 지속적인 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황해도 도민회 이사장인 민명기 씨도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저희 고향은 해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요, 농촌인데요 저희 선조들이 다 농사를 지었어요. 아주 경치도 좋고 풍수지리가 아주 좋은 곳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민 이사장은 부모와 함께 서해의 옹진군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물론 세상이 조용해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됐고 남과 북으로 다시 갈렸습니다. 결국 민 이사장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천을 거쳐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에 정착했습니다. 고향에는 작은 아버지가 남아 있었지만 60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민 이사장은 60년 전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4km 정도를 걸어서 다녔는데, 개울을 건너서. 비가 오면 그 개울을 건너기가 상당히 힘들었는데, 다리를 걷고 여러 동무들과 함께 학교를 가던 그런 생각이 나고…”

민 이사장은 동네 앞 산에 봄이 되면 붉은 진달래가 활짝 피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민 이사장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고향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평생을 고향에 돌아간다는 희망으로 살았던 부모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몇 해 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미주 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고향에 대한 생각은 각별하다며, 한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 이북의 고향 주소가 길어요. 무슨 리 무슨 구 등등 굉장히 깁니다. 이 사람들이 그건 다 외우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의 주소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미국 내에는 10만 명에서50만 명의 한인 이산가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 이산가족들은 그래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북한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한인 이산가족 상봉 관련 법안이 통과돼 발효되면서 진전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관련 법안이 지난 해 만료됐지만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올해부터는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주 한인이산가족 상봉추진위원회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이제는 정말 시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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