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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탈북자 1백 명 시대 II] 성공을 다지는 탈북자들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 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업체를 인수해 운영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대학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학장상까지 받은 젊은이도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탈북 난민 1백 명 시대를 맞아 보내드리는 특집방송.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탈북자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탈북 난민들에게 미국 생활에 필요한 법률 상식을 제공하는 한 설명회장. 강사 변호사가 갑작스레 설명을 멈추더니 통역인 유한 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합니다.

“유한 씨가 설명을 너무 잘해 자신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떠는 겁니다. 통역인 유한 씨는 변호사의 설명을 듣는 탈북자들처럼 4년 전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처음 입국한 탈북자입니다.

미국 북부의 2년제 전문대학에 재학 중인 유한 씨는 입학 후 지금까지 전 과목에서 계속 만점을 받아 학장상과 함께 교내 최우등생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알파벳만 겨우 익혔던 20대 중반의 유한 씨. 그가 이렇게 학업에 열중하는 배경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탈출을 하게 됐잖아요. 배고픔 때문에. 어린 나이에 만 13살 때부터 중국에 살았는데 신분증이 없으니까 학교를 갈 수가 없었어요. 중국에서 만으로 6년 동안 살았는데 6년이란 게 다른 애들, 제 나이 또래 애들은 중학교 공부하고 고등학교 공부하고 꿈을 이뤄가고 열심히 하는데 저는 중국에서 감옥 아닌 감옥이죠. 그 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피부로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북한에서 소학교만 갓 졸업한 뒤 탈북한 이 청년이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GED)를 통과하고, 대학에서 학비 전액 뿐아니라 매 학기2천 달러의 추가 장학금까지 받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미국에 와서 처음부터 길이 순탄했던 건 아니거든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돈도 없고,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안되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내가 대학교를 갈 수 있고, 꿈을 성취할 수 있는지 인포메이션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방황을 했죠. 돈도 없고, 배도 고프고. 그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러 가서 돈 벌고, 그게 제 삶이었는데 내가 과연 이렇게 살려고 미국에 왔나, 그런 회의감도 많이 느끼고……”

유한 씨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국에서 배운 기도를 다시 간절히 했다고 합니다.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길이 열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도움의 손길도 필요하고 하니까 하나님, 저를 도울 수 있는 만남의 축복 주셔서 도움의 손길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2007년에 길이 열려서 *** 시까지 오게 된 거죠.”

북한 선교에 뜻이 있는 미 북부 도시의 한인교회가 주거지와 공부의 기회를 제공해 이후 맘껏 공부할 수 있었다는 유한 씨. 얼마 전 미국 최고의 명문대로 뽑히는 하버드대학에 편입 응시를 했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눈에는 실망보다 감사와 도전의 열망이 가득합니다. 그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동생들이 2명이 있었는데 2 명 다 병으로 죽었거든요. 한 명은 태어나서 1년도 안 돼 가지고 대장염인데 여기 나와보니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쉽게 병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건데 (북한에는) 병원 시설과 의료환경이 열악하다 보니까 약 한 첩 제대로 못 써 보고 그냥 죽었거든요. 그런 걸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제가 의술이 있으면 그걸 갖고 제 동생 같은 애들이 더 이상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어려운 아이들. 아픈 아이들. 그런 것 도우면서 하나님 사랑 전하는 그런 사람이 의료 선교사.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의학 공부를 하려고 결정하게 됐어요.”

미국 서부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 30대 청년 바울 씨. 2년 전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 입국한 바울 씨는 최근 지인들의 도움으로 한 사업체를 인수했습니다.

“처음 2년 동안 고생도 많고 마음 속에 아픔도 많았어요. 미국이라는 곳이 생각처럼 쉬운 나라가 아니었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말처럼 순탄치도 않았고. 그런데 그 곳에서 소신을 갖고 열심히 살다 보니까 많은 분들께서 믿어 주시고, 부모님 같은 분들이 격려도 해주시고 그런 도움을 통해서 이번에 자그마한 비즈니스를 하나 장만하게 됐습니다.”

자동차 수리업소, 의류 도매업소 등 여러 직장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이득보다 동료들을 먼저 배려하며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으로 살았다는 바울 씨.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제가 대신 뭐 좀 해주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사람의 아픔도 제가 이해하게 되고. 이제 첫 시작이에요. 시작에 불과한데 앞으로 어떻게 지키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씨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에는 북한판 빌 게이츠를 꿈꾸는 청년 로버트 씨가 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창업한 세계 최대의 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처럼 되겠다며 한 정보기술 업체에서 프로그램 개발에 여념이 없는 로버트 씨.

북한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며 ‘수재’소리를 들었다는 그는 북한 주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다부지게 말합니다.

“조금 주제 넘지만 내가 케어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 숙명처럼요. 내가 할 일이다. 그걸 숙명처럼 생각하고 살긴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통일은 정치가들이 하고 나머지 잘 먹고 잘 살리는 건 내가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죠.”

일반인도 취업하기 힘든 미국인 병원에서 간호보조사로 일하며 야간대학에 다니는 열성파 데보라 씨. 북한 소학교 중퇴 출신임에도 미국 입국 1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미래 북한의 정치일꾼을 꿈꾸는 20대 초반의 저스틴 군. 16살 나이로 미국에 혈혈단신 입국한 뒤 우등생을 놓치지 않는 고등학생 조셉 군. 그 밖에도 적지 않은 탈북 젊은이들이 북한에서의 아픈 기억들을 곱씹으며 더 나은 미래의 북한을 만들기 위해 성공을 일궈가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코헨 객원 선임연구원은 이런 성공적인 사례들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미국 정부가 보다 많은 탈북자들에게 정착 기회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탈북자들은 열악한 북한 사회를 재건할 일군들이자 북한과 미국의 밝은 미래를 연결해 줄 중요한 인적자원이란 겁니다.

낯선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문화적 이질감 등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성공을 일궈가는 젊은 탈북자들. 이들의 밝은 미소는 북한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미국인들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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