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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제막식 통해 본 31년 전 아웅산 폭탄 테러


아웅산 폭탄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 제막식이 현충일인 6일 오전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됐다. 추모비는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국빈 방문 시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순직한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사진은 1983년 테러 당시 아웅산 참사 현장 모습.

아웅산 폭탄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 제막식이 현충일인 6일 오전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됐다. 추모비는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국빈 방문 시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순직한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사진은 1983년 테러 당시 아웅산 참사 현장 모습.

한국 정부가 버마 아웅산에서 31년 전 폭탄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순국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31년 전 아웅산 폭탄테러가 어떤 사건이었는 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1983년 10월 9일 오전, 버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딴 아웅산 국립묘지.

해외 6개국 순방의 첫 나라로 버마를 방문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의 참배를 준비하던 이 곳에서 강력한 폭탄이 폭발합니다.

[녹취: 당시 폭발음]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폭발은 천장이 폭삭 주저 앉을 정도로 강력했고, 현장은 비명과 신음이 교차하는 비극의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 폭발로 현장에서 참배를 준비 중이던 한국 정부 고위 각료 등 17 명과 버마 공무원 4 명이 숨지고 수 십 명이 다쳤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예정됐던 참배 시간보다 현장에 늦게 도착해 화를 면했습니다.

전 대통령은 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버마 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 일주일 여 만에 북한인 용의자 3 명을 적발했습니다. 이들 중 1 명은 사살되고 2 명은 생포됐습니다.

버마 정부는 이후 아웅산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발표하고 북한과 단교를 선언했습니다.

범인은 북한 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김진수 소좌와 강민철, 신기철 상위로 드러났습니다. 버마 당국은 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지령에 따라 북한 인민군 강창수 소장의 지시를 받고 9월 17일 버마에 입국해 테러를 감행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북한 정권의 도발을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녹취: 전두환 대통령]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북한 김일성 집단이 저지른 이번 버마 폭거는 국가원수인 본인에 대한 위해 기도로서 새삼 말씀 드릴 필요도 없이 곧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중대한 도발 행위인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테러가 한국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침략전쟁의 선언이라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 보복 대신 북한 정권을 고립시키는 외교적 압박을 선택했고 이와 관련한 내용은 올해 초 공개된 ‘늑대사냥’이란 제목의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테러가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되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코스타리카 등 일부 나라는 단교를 선언했고, 미국을 비롯해 60개 이상의 나라가 규탄 성명과 교류 제한 등 대북 제재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는 테러가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부인했고 지금까지도 이를 시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의 전직 고위 관리는 ‘VOA’에, 북한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세 차례 암살을 시도해 실패한 끝에 아웅산 테러를 감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버마 최고재판소는 생포된 두 범인에게 1984년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한 김진수는 사형이 집행됐지만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5년 간 복역하다 2008년 간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북한과 버마는 이후 24년 만인 2007년 군사교류 강화 차원에서 국교를 다시 회복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아웅산 테러 이후 버마를 방문하지 않다가 지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버마를 전격 방문하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테인 세인 버마 대통령이 서울을 답방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버마 정부에 줄곧 추모비 건립을 요청했지만 버마는 장소가 국립묘지란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인 테인 세인 대통령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사건 발생 31년 만에 추모비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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