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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첫 공식 직위에서 최고 권력자 오르는 데 33년 걸려

  • 김연호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불과 2년 만에 북한 정권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수 십 년에 걸쳐 후계자로서 자리를 굳히는 과정을 밟았던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상황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 승계 과정을 김연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주체 53, 1964년 6월 1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 시기에 전당의….”

1964년 당시 김일성 주석은 20대 초반의 큰 아들 김정일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 자리에 앉혔습니다. 김정일이 중앙기구를 관리하는 핵심 부서에서 당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김정일은 1964년부터 66년까지 지근 거리에서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보좌하며 정치수업을 받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현지 지도에31번이나 동행했고, 여기에는 15번의 장기 출장도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었던 삼촌 김영주도 김정일의 정치학습을 도왔습니다.

이와 동시에 북한 정치의 가장 핵심에 있었던 갑산파 주요 간부들에 대한 숙청작업도 진행됐습니다. 1967년 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비서, 이효순 대남사업 총국장 등이 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수령론에 입각한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됐고, 후계자로서 김정일의 입지도 강화됐습니다.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 방문연구원으로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류길재 교수의 말입니다.

“김일성의 권력과 권위를 굉장히 높임으로 해서 김일성의 혈육이고 김일성의 혁명 위업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적통이 바로 김정일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하나의 근거가 됐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유일주체사상으로 한층 힘을 얻은 김정일은 70년대 초 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과 부부장으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전문 분야인 문화, 예술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김일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이 만든 혁명가극은 빨치산 원로들의 지지까지 얻어냈습니다.

김정일은 조직지도부장 겸 선전선동부장, 당 조직 선전담당 비서를 거쳐 1974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의 자리에 오르면서 후계자로 공식 인정받게 됩니다.

이 무렵부터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당 중앙’ 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 선포된 1980년 6차 당 대회까지 당 사업체계와 기구 정비에 착수해 후계자로서 인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후계자 지위가 대내외적으로 공식화된 뒤 김정일은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 사업에 나섰습니다. 김덕홍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입니다.

“김동규는 정치국 위원인데, 그 사람도 김일성이 얘기하니까 찬성한 거예요. 그런데, 속으로는 마음에 없는 것을 찬성한 거에요. 그러니까 김일성 사람만 다 하겠다는 거 아닌가 이거예요. 그 것 가지고 옥신각신 한 것 같아요. 잘 안되니까 자청해서 죽은 것으로 소문이 났어요.”

90년대 들어와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최고사령관을 거쳐 국방위원장에 오르면서 군권도 장악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김정일의 수령 승계가 언제쯤 이루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김정일은 3년의 추모기간을 선포하고 유훈통치에 들어갔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정통성을 김일성에게서 얻어내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김일성 주석 추모기간이 끝나자 김정일은 1997년 10월 당 총비서로 추대돼 김정일 시대를 공식화 했습니다. 1964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첫 공식 활동을 시작한 지 33년이 지난 뒤, 53살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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