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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인철 KAL 피랍가족 대표] “피랍자 송환, 국제사회에 적극 제기할 것”


‘1969년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는 오늘(5일)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국제적십자연맹에 보내달라며 청원서를 대한적십자사에 제출했습니다. 가족회는 청원서를 통해 지난 1969년 비행 도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KAL기 탑승객 11명에 대한 생사확인과 송환노력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요, 이 단체의 황인철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문) 먼저 청취자 여러분들 가운데 이 사건을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어떤 사건이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 좀 설명해 주시죠?

답) 저희 사건은 지난 1969년 12월 12일에 강릉 발, 김포 행 국내선 항공기가 오후 12시25분, 이륙한 지 10분만에 북한의 고정간첩에 의해서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입니다. 이듬해인 1970년 2월14일에 승객 39명을 송환했는데요. 북한은 2월3일 정도에 전원 송환하겠다고 밝혔었음에도, 11명을 뺀 39명만 송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도 11명이 북한에 계속 강제 억류된 사건입니다.

문) 사건이 발생한 지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피랍자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군요?

답) 아직도 변함 없는 아픔 속에 있죠.

문) 오늘 국제적십자기구에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대한적십자사에 내셨는데요, 어떤 내용이 담겨있습니까?

답) 피랍자 중 스튜어디스 성경희 씨가 지난 2001년 제3차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에서 어머니 이후덕 씨와 만났습니다. 모녀 상봉에서 같이 납북된 정경희 씨가 같은 동네에서 잘 살고 있고, 본인들의 아들도 이모라고 부르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2002년 6월에 정경희 씨가 생사확인 불가라고 나왔고요, 저희 아버지도 생사확인 불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를 포함한 미귀환 11명이 살아계셔도 북한에 살아계실 거고, 돌아가셨어도 북한에서일 텐데, 한국의 가족에게 생사확인 불가라는 답변을 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저희가 지난 6월17일,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실종문제에 관한 실무그룹에 저희 아버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몇 분을 접수했습니다. 그러면서 KAL기 납치 사건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중대한 인권범죄인지 알게 됐고요. 또 국제사회 안에서는 아직도 시효가 전혀 적용되지 않으면서, 국제 관습법 상 강행구금으로 반드시 우리 시대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하고, 저희 아버지의 생사와 중국을 제외한 제 3국에서의 상봉과 송환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드렸습니다.

문) 그러니까 당시 피랍됐던 11명 중에 1명만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에 나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생사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얼마 전에 북한에 직접 서한을 전달하려는 시도도 하신 걸로 압니다. 그 이후로 북한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나요?

답) 전혀 반응이 없고요. 편지 전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문) 아예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군요?

답) 북한 당국도 인도적인 조치를 요구하니까요. 저희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가족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통일부를 통해서 보내려고 했는데요. 북한이 그 자체를 완전히 거부해버린 겁니다.

문) 그러니까 지금 북한의 인도적인 요구라는 것은, 북한이 앞서 한국으로 떠내려간 북한 주민의 송환을 요구했던 일을 말씀하시는 거죠?

답) 그렇습니다.

문) 최근 들어서 국제사회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앞서 말씀 하셨듯이 유엔에도 이 문제를 신고하셨고요. 국제사회의 반응과 관심은 어떤지 좀 말씀해주시죠?

답) 유엔의 강제실종문제에 관한 실무그룹은 비공개로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답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규정 상으로는 6개월 안에 답변을 줘야 하지만, 북한은 아직 답변을 하지 않은 상태고요. 다만 이것이 비공개 상태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 가족들도 현재로서는 나설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문) 일단 현재로서는 유엔 실무그룹의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군요?

답) 1차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문) 사실 40년 이상 지난 사건이라서, 한국에서도 그렇고, 국제사회에서도 그렇고 사건에 대한 관심이 어떤지 궁금한데요. 어떻습니까?

답) 저희가 가장 큰 벽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소름 끼치는 침묵과 차디찬 무관심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 또 심각한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조금씩 알아간다면, 저희 문제는 풀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국제기구에 계속 청원을 하시는 거죠?

답) 맞습니다.

문) 그런데 조금 대비가 되는 것이, 일본 정부의 경우 자국민 피랍 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이거든요? 오늘은 그런 이유를 들어서 대북 제재를 1년 더 연장한다는 발표도 있었고요. 한국 정부의 경우 그간 어떤 입장이었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습니까?

답) 참 안타깝게도요, 한국 정부는 지난 2007년 10월에 납북자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제4조를 보면 국가의 책무로,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별로 없었습니다. 올 3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외교통상부 차관 연설에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말씀해주셨거든요. 하지만 그 배경에는 제가 외통부에 남북자를 위한 국가의 책무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전화를 했었고요. 반면에 실제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북한과 일본이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한국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시군요?

답) 그렇습니다.

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앞서 잠시 말씀 드렸지만, 올해 초 북한에서 한국으로 표류했다가 망명한 주민들도 있고요. 하지만 돌아가겠다는 주민은 한국 정부가 북한으로 송환했거든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남 다른 심정이셨을 텐데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여쭙고 싶고요. 또 이 방송이 북한으로 나가는데요, 북한 당국이나 당국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이 기회를 빌어서 해주시죠?

답) 지금 세계는 인도주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것들의 기준이 될 수 있고요. 이번에 한국에서 망명을 원한 북한 주민 4명에 대해서도 인도적인 차원으로 진행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인도주의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 측에 편지로 요구하려 했던 것은, 북한 스스로 인도주의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이제는 저희 문제도 인도적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북한은 인도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했고요. 저희 가족들에게는 또 다시 반인류적인 일을 저지른 겁니다. 이런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항상 국제법에 준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 북한도 인도주의를 논하는 한 나라로서, KAL기 피랍자 가족들의 요구도 하루빨리 들어달라는 말씀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풀 수 있는 문제고요. 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본 피랍자 가족들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아무리 강하게 주장을 해도, 북한이 모른다고 얘기했을 때 논란이 되거든요. 그렇지만 저희 문제는 국제사회가 다 아는 납치 사건이기 때문에, 북한이 발뺌을 한다면 스스로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도 없는 사건이고요, 북한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국 정부가 어떠한 식으로든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답)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 대표 황인철 씨로부터, 피랍자 가족들의 안타까운 심정과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송환 노력에 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근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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