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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독재자가 걸어온 길


젊은 시절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젊은 시절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운둔의 독재자로 불릴 만큼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철권통치 시기를 핵. 선군정치와 국제적 고립, 만성적인 식량난의 시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김정일 위원장의 일생을 돌아봤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41년 옛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소련식 이름은 슈라.

그러나 북한 정부는 김일성 주석의 후계 정통성을 맞추기 위해 김 위원장의 생년월일과 출생 장소를 1942년 백두산 밀영으로 바꿔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1974년 후계 경쟁자였던 삼촌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을 제치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됐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인 공식 후계자로 선포된 것은 1980년 당 중앙군사위원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뒤부터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후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친인척 제거와 원로에 대한 예우를 갖추며 당 조직과 군 기구들을 차례로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자신을 바로 최고 지도자로 선포할 수 없었습니다. 옛 소련 연방의 붕괴로 원조가 끊기면서 경제가 피폐해지고 자연재해와 정부의 경제실책이 이어지면서 온 나라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내건 유훈통치, 그리고 국가 최고기구로 권한이 확대된 국방위원회의 수장을 맡으며 최고 지도자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이후 미사일과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며 선군통치를 권력 기반으로 삼는 동시에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외부 원조의 극대화를 꾀했습니다.

하지만 선군통치는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을 과도하게 국방비에 투입해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고립화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8월 뇌졸중을 앓으면서 건강이 악화되자 서둘러 후계구도를 가속화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셋째 아들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히며 3대 세습을 사실상 공식화했습니다.

하지만 화폐개혁과 장마당 단속 등 후계구도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들이 잇달아 실패하면서 정권에 대한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37년간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려왔습니다. 국민의 10분의 1이 기아로 숨진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과 최악의 인권 상황 등으로 김 위원장은 매년 세계 언론과 종교, 인권단체들이 뽑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돼 왔습니다.

또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한 벼랑끝 전술로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했고 개혁개방을 거부하며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해 경제난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 등 주요 언론들은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를 ‘운둔의 독재자’, ‘기아와 인권 유린의 독재자’, `북한을 핵 국가로 만들며 나라를 고립시킨 독재자’ 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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