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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사상범 구제 북한선 상상도 못해”


북한에 몰래 들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한국 사람들은 비단 한상렬 목사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상범 또는 양심수로 불리던 이들 가운데 형무소 복역 중에 형량이 줄어들거나 사면복권된 예도 많았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들은 이번 한 목사 사건을 보면서 사상범에게도 철저하게 법 절차를 적용하는 일이 북한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새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에선 그동안 당국의 승인 없이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법을 어긴 죄로 처벌을 받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동서 냉전이 끝날 무렵인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논의해야 한다는 열망이 높아졌습니다. 정치와 종교 문화계 학생운동가까지 각계에서 통일 논의의 물꼬를 트겠다며 정부의 승인 없이 무단 방북하는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1988년 8월, 당시 한국의 야당 국회의원이 유럽여행 중에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해 체코를 통해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과 면담하고 돌아온 사건이 발생해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평민당의 서경원 의원은 한국에 돌아온 뒤 체포돼 재판을 받고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아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후 1989년 3월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은 고 문익환 목사가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문 목사는 이 일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소설가 황석영 씨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독일과 미국 등지에 머물면서 모두 다섯 차례 북한에 들어간 혐의로 징역6년형에 처해졌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임수경 씨는 1989년 6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하기 위해 문규현 신부와 함께 북한에 들어가 두 달 가까이 머물며 북한을 돈 뒤 한국으로 돌아와 각각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을 어긴 이들은 사상범 또는 양심수라고 불리며 대부분 형을 다 마치기 전에 감형 혜택을 받고 미리 석방됐습니다.

작가 황석영 씨는 이후 북한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으며 신작 소설도 잇달아 펴내면서 인기작가로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임수경 씨와 문 신부도 1992년 겨울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됐습니다.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친 임수경 씨는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잇습니다.

이번 한 목사 사건을 지켜보면서 무단으로 북한을 방문한 사람 등 사상범들을 다루는 한국 정부의 방식이 북한과 전혀 달라 놀라웠다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의 김명성 총무부장은 북한에 있을 때 북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한국에 돌아간 임수경씨가 나중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북한 기자들이 한 번 남측에 왔다가 임수경 집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좌우간 그 사람들이 갔다 와서 그 때 임수경이 살아있다 그런 소문이 퍼졌어요. 저희가 전해 듣고는 죽지 않았구나 그런 충격을 받았죠, 죽이지 않는구나…”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소위원회 위원장 이재원 변호사는 북한에도 사법절차가 있지만 사상범에겐 이를 적용하지 않고 처형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데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다고 보여지는 그런 사범에 대해선 대개는 재판도 안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넣거나 아니면 공개총살을 하거나 이런 식으로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처리하지 않고 그 사회에서 영구 격리하던지 절멸시킨다 말이에요.”

NK지식인연대 김 부장은 지난 2003년 한국에 들어 온 뒤에도 한동안 사상범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누구나 똑 같은 법적 권리를 누리는 법치주의 사회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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