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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문화, 세상을 바꾸는 힘!’ ‘ 제1부, 냉전시대의 서방문화’


공연 여행에 분주한 비틀즈

공연 여행에 분주한 비틀즈

많은 학자들은 서방 대중문화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틀즈로 대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서방 대중음악은 억압받던 공산권 젊은이들에게 숨 쉴 공기를 불어넣어줬고요. 할리우드 영화나 텔레비전 연속극에 비친 서구 사회의 발전된 모습은 공산주의의 모순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건데요. ‘미국의 소리’가 마련한 특별기획 ‘문화, 세상을 바꾸는 힘!’ 오늘 ‘제1부, 냉전시대의 서방 문화’ 시간에는 서방 대중문화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과정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1960년대 어느 날, 비틀즈를 태운 비행기는 일본으로 가던 중 급유를 위해, 잠시 소련 땅에 내렸다. (SFX: airplane landing)급유를 기다리는 동안, 비행기 밖으로 나온 비틀즈 단원들, 비행기 날개 위에서 즉석 공연을 펼쳤다.”

안녕하세요? ‘라디오로 여는 세상’, 특별기획 프로그램 ‘문화, 세상을 바꾸는 힘’ 오늘 진행을 맡은 부지영입니다. 조금 전에 들으신 얘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비틀즈는 소련 땅에 발을 디딘 일도, 비행기 날개 위에서 노래를 한 일도 없었다는 건데요. 하지만 구 소련 곳곳에는 지금까지도 비틀즈의 소련 공연에 대한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비틀즈의 음악이 두터운 철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서, 그 곳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결국 소련 당국은 비틀즈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는 얘긴데요. ‘미국의 소리’가 마련한 특별기획 ‘문화, 세상을 바꾸는 힘!’ 오늘 ‘제1부, 냉전시대의 서방 문화’ 시간에는 서방 대중문화가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의 몰락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달 중순 전 세계 여러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해리 포터’ 마지막 편…… 마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에 많은 러시아인들도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인기 가수 브리티니 스피어스는 오는 9월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대규모 공연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제 구 소련 국가에서 서방 대중음악 가수들의 공연이 열리거나, 헐리우드 영화가 상영되는 건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들은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외부 문화의 유입을 철저히 단속했는데요. 그래도 미국과 서유럽의 영화와 음악은 작은 틈새를 타고 철의 장막 속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196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비틀즈의 음악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이렇게 영국 젊은이 4명이 연주하는 비틀즈의 음악은 마치 무서운 바이러스처럼 공산권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가운데는 유리 펠류셰녹 씨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새로운 공기였죠. 색달랐고요. 거의 악마적인 매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 음악을 들으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제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까지 그런 음악을 들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교사들은 마치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봤지 / 공산주의를 건설하는데 비틀즈가 끼어든다고 / 비틀즈 음악은 안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좋다고 했지 /브레즈네프 동지까지 고개를 내저었지”

유리 펠류셰녹 씨가 직접 지은 노래 ‘Yeah Yeah Virus’를 잠시 들으셨는데요. 구 소련 당시 벨라루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펠류셰녹 씨는 학창시절 비틀즈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썼다고 합니다.

“제 사촌이 불법복제 음반을 사와서 같이 들었는데, 비틀즈의 ‘Can’t Buy Me Love’ 였어요. 그걸 듣고 노래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펠류셰녹 씨는 자유분방한 비틀즈의 음악에 금방 빠져들었는데요. 비틀즈 노래를 몰래 듣는데만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처럼 멋지게 연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결국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서 기타를 손에 넣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기타를 사주셨는데, 당시 굉장히 가격이 비쌌어요. 체코산 기타였는데, 비틀즈 단원이었던 조지 해리슨의 첫 기타도 같은 공장에서 만든 거였다고 해요. 어쨌든 정말 멋진 기타였죠. 하지만 전기 기타가 아니어서, 픽업이 없었어요.”

기타줄의 떨림을 포착해서 앰프, 그러니까 증폭기에 보내는 네모난 장치가 바로 픽업인데요. 당시 소련 상점에서는 이 픽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1960년대 소련에서는 공중전화 수화기가 밤새 사라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SFX: telephone handset) 미국의 대중음악 록큰롤에 빠진 소련 젊은이들은 수화기를 이용해 픽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들에게 거리의 공중전화는 아주 좋은 목표물이었다.

펠류셰녹 씨 역시 수화기를 이용해서 픽업을 만들었습니다. (SFX: pick up making sound) 그리고 비틀즈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록큰롤 악단을 만들었는데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대로 록큰롤 음악을 연주하려면, 낮은 음을 내는 베이스 기타가 필요한데, 베이스 기타를 구할 수 없었던 겁니다. 펠류셰녹 씨는 친구들과 함께 나무를 잘라 붙여서, 직접 베이스 기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또 베이스 기타 줄을 구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학교 피아노 줄을 빌리기로 했죠. 쉬는 시간에 몰래 학교 피아노 줄 4개를 잘라가지고 와서, 베이스 기타를 만들었죠. 새해 전야 학교 모임에서 이 기타를 들고 연주를 했는데요. 연주하는 중간에 기타가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어요. (SFX: 기타 부서지는 소리) 음악 교사에게 크게 혼이 나고, 하루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비틀즈의 음악은 펠류셰녹 씨가 나중에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방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자유로운 세계에 나가 살 거란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요. 소련이 무너진 뒤 캐나다로 이민 온 펠류셰녹 씨는 자신이 경험한 얘기를 담은 책 ‘비틀 베이스를 위한 기타줄: 소련의 비틀즈 세대’를 펴냈습니다.

사실 소련 젊은이들이 서방 대중문화를 접한 건 비틀즈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비틀즈 이전에도 재즈와 헐리우드 영화같이 서방 대중문화와 접촉한 일이 있었는데요. 미국 인디애나 주에 있는 볼 주립 대학교 역사학과 세르게이 쥬크 교수의 설명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처음 소련에 서방 문화를 소개한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병사들이었습니다. 스탈린 시대 말기에 체코슬로바키아나 동독과 같은 소련 점령지역에 나갔던 병사들이 돌아오면서, 서방 물건을 들여온 겁니다. 그리고 소련에 서방 문화를 전한 또다른 경로는 미국의 라디오 방송이었습니다.”

VOA 등 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재즈가 소개된 건데요. 처음에 스탈린 정권은 미국의 재즈 음악을 받아들였습니다. 재즈를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흑인 저항운동의 일부로 봤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소련 당국이 재즈뿐만 아니라, 모든 서방 대중문화의 유입을 금지한 겁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죠. 왜냐하면 재즈는 이미 소련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1946년인가, 1947년에 미국이 소련 청취자를 대상으로 한 방송을 늘렸는데요. ‘뮤직 USA’라고 굉장히 재미있고 유명한 라디오 쇼가 있었습니다. 새로 유행하는 재즈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죠. 물론 소련 비밀경찰 (KGB)이 전파 방해를 하려고 했죠. 하지만 소련 당국이 전파 방해를 한 러시아어 방송 말고 영어 방송도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VOA 영어방송을 듣기 시작하면서, 소련의 주요 도시에서 첫 번째 반 체제 문화, 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스틸야고(Stilyaga)’가 나타났습니다.”

지난 2008년에 공개된 러시아 영화 ‘스틸야기’의 예고편을 잠시 들으셨습니다. ‘스틸야고’, 또는 ‘스틸야기’는 한국어로 ‘멋쟁이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소련의 엘리트 계층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문화가 바로 ‘스틸야고’입니다.

당시 소련의 획일적인 체제와 옷차림에 반기를 들고, 미국의 음악과 유행을 따라하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서구화 단계는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입니다. 흐루스초프는 스탈린을 비판하고요. 소련을 개방하면서 소련 사회와 정치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또1957년 모스크바 국제청소년축전 개최를 허용했죠.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에서 서방 세계 젊은이 수천 명이 처음 소련에 왔습니다. 이들이 청바지와 같은 새로운 옷차림을 소련에 소개했고요. 재즈가 담긴 음반, 또 당시 재즈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록큰롤 음반을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해외여행이 허용됐는데요. 소련 사회 전체의 1 퍼센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일부 소련인들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게 됐고요. 외국에 나갈 기회를 접한 사람들이 서방 문화를 들여온 겁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초까지, 소련에서 흐루시초프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는 자유와 개방의 가능성이 엿보이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흐루시초프는 브레즈네프에 의해 밀려났고요.

잠시 열리는 듯 했던 소련의 문은 다시 굳게 닫혔습니다.

“사실 브레즈네프와 그 동료들이 좀 더 개방을 하려고 했다면, 비틀즈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겁니다. 구하기 힘들다는 것, 금지된 것이란 사실이 더 매력적으로 만든 거죠. 원래 못 먹게 하는 과일이 더 맛있어보이기 마련이거든요. 비틀즈 음반을 갖고 있다가 걸리면 큰 벌을 받았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었죠.”

지난 2009년 영국 BBC가 방송한 기록영화 ‘비틀즈, 크렘린을 흔들다’의 제작자인 레슬리 우드헤드 씨의 얘기였는데요. 외국에 나갔던 소련 군인들이나 운동 선수들이 귀국하면서 몰래 비틀즈 음반을 들여오려고 했지만, 세관원에게 뺏기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일단 들여오는데 성공하면 굉장히 높은 값에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통 소련 젊은이들은 어디서 비틀즈 음반을 구했을까요?

“라디오 룩셈부르크, 미국의 소리 VOA 방송, BBC 월드 서비스 방송을 몰래 들으면서 비틀즈 음악을 녹음했죠. 그렇게 녹음한 걸, 길거리의 간이 녹음시설에서 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을 구하기 힘드니까, 삼촌이나 친척의 갈비뼈 사진이 찍힌 엑스레이 필름을 둥글게 잘라서 썼죠. 그러니까 병원 같은 데서 쓰다버린 엑스레이 필름을 이용해서 해적판 비틀즈 음반을 만든 겁니다.”

“비틀즈 열기는 소련 젊은이들의 머리 모양과 옷차림까지 바꿔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비틀즈의 장발을 따라 머리를 길렀고…… 비틀즈 단원 존 레논이 쓰던 것과 같은 모양의 안경은 높은 값에 팔렸다. 또 많은 여성들이 비틀즈 사진을 모으고…… 비틀즈 단원들과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꿨다.”

“공산당국이 가장 참을 수 없어했던 건 자신들이 조롱거리가 되는 거였는데요. 크렘린은 비틀즈 숭배가 정권에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느꼈고요.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한 세대 전체가 비틀즈에 빠졌고, 비틀즈의 음악은 점차 공산주의의 근간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비틀즈 열풍이 가장 거세긴 했지만, 공산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비틀즈만이 아니었는데요. 냉전시대 당시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 정부는 서방 대중문화를 상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영국 스완지 대학교 역사학과 켈리 히그넷 교수입니다.

“일종의 문화무기로 봤던 거죠.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이 공산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라고 말이죠. 물론 당국이 검열에 나섰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히그넷 교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유럽 국가 주민들 사이에 소비문화가 발전했다고 지적했는데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VCR, 그러니까 녹화기 등을 소유하게 되면서, 국민이 뭘 보고, 뭘 듣는지, 당국이 단속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1980년대 인기 텔레비전 연속극 ‘달라스’의 한 장면을 들으셨는데요. 가상의 텍사스 석유재벌 유잉 일가의 음모와 탐욕을 그린 ‘달라스’는 67개 언어로 번역돼 90개국에서 방영됐습니다.

“루마니아는 미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달라스’를 방영했다. 하지만 ‘달라스’는 결국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총살대에 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루마니아 인들은 ‘달라스’를 통해 서방의 선진 문물을 접했고…… 자신도 그런 걸 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속극 ‘달라스’에서 주인공 JR 유잉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래리 해그먼 씨는 호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습니다. ‘달라스’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건데요. 러시아 출신 동유럽 전문가인 콘스탄틴 플레셰코프 교수에 따르면, 동구 공산권 주민들은 서방 대중문화를 통해 서구 사회를 엿볼 수 있었고, 그 발전된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서방 생활양식은 보다 나은 문명을 대표했으니까요. 동구 공산권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과 같은 걸 제공할 수 없었죠. 그러니까 물질주의를 얘기하는 겁니다. 옷이라든지, 식품이라든지, 여흥이라든지…… 이런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서방 도시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깨끗하고 잘 정돈돼 보이거든요. 구 소련이나 동구 공산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훨씬 발전된 문명처럼 보이니까 끌렸던 거죠.”

영국 스완지 대학교 켈리 히그넷 교수는 서구 영화나 연속극이 공산권 주민들에게 서방 세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고 말했습니다.

“서방 연속극과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서방 국가에서는 모두 다 저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죠. 미국인들은 모두 다 뒷뜰에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산다고 말입니다.”

이보다 앞서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이미 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람들을 단합시켜서, 직접적인 정치적 변동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1976년, 록 밴드 ‘플라스틱스’ 단원들이 불법 공연을 가졌다. 체코 당국은 ‘플라스틱스’ 단원들과 공연 주최자를 체포했고……. 공공질서를 문란시켰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다. (SFX: gavel) 그러자 체코 지성인들이표현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며 들고 일어났다. 정부 당국이 국민의 기본 권리를 짓밟는 현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거였다.”

1976년 ‘플라스틱스’ 단원들이 체포된 데 반대하는 시위가 번지면서, 다음 해 나온 것이 바로 ‘77헌장’인데요.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파 지식인들이 당시 정권의 억압 실상을 고발하며 서명한 인권선언이었습니다. 당시 ‘77헌장’의 발기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이른 바 ‘벨벳 혁명’을 주도해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 국가 체크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저는 서방 대중문화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에 있어서 주요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틀즈나 청바지나 말보로 담배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서방의 생활양식은 철의 장막 너머 공산권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70년대말, 1980년대초에 이르자, 공산권이 많이 뒤떨어졌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됐고요. 공산주의는 주민이 원하는 걸 줄 수가 없고, 대안은 오직 자본주의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된 겁니다.”

미국 동부 매사추셋츠 주에 있는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 콘스탄틴 플레셰코프 교수의 얘기였습니다. 또한, 공산권 젊은이들은 당국이 서방 대중문화를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모순을 깨닫게 됐습니다. 동유럽 전문가 켈리 히그넷 교수입니다.

“정부 당국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서 단속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소련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국민이 뭘 보는지, 뭘 듣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심지어 머리 모양까지 단속했으니까 말이죠. 러시아 역사학자 미하일 사파노프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소련 당국이 비틀즈를 금지하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서, 도리어 공산주의 사상이 얼마나 헛되고 웃긴 건지,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로켓 도시의 록큰롤’이란 책의 저자인 세르게이 쥬크 교수 역시, 록큰롤과 같은 대중문화가 공산주의 몰락과정에서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소련에서 자랄 때, 사람들이 비틀즈 음악에 대해 이런 농담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비틀즈는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란 이름의 정치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록큰롤과 같은 음악과 또 음악을 둘러싼 문화적 관습이 공산주의 가치와 제도를 말살했고요. 특히 젊은이들에게 공산 체제에 대해서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쥬크 교수는 구 소련 당시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에서 록 음악과 서방 대중문화가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이 도시는 브레즈네프 정권 시절에 소련 비밀경찰(KGB)의 엄격한 단속 아래 있던 이른바 폐쇄 도시였습니다. 쥬크 교수는 이 도시의 젊은이들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궁극적으로 공산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스위트’와 ‘슬레이드’, 개리 글리터 같은 상업적인 영국의 대중음악이 소련에 들어왔다. 이런 상업적인 음악의 유입은 록 음악에서 디스코 음악 소비로 넘어가는 중요한 다리가 됐다. 귀에 쏙 들어오고 춤추기 좋은 음악이 유행하면서……. 소련 전역에 디스코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련 당국은 이런 음악을 크게 규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정치성이 배제된 이런 음악이 다른 록큰롤 음악보다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쥬크 교수입니다.

“제 책에서 1970년대 소련인 수백만 명이 록 음악을 들으면서, 록 음악 소비의 민주화가 이루졌다고 썼는데요. 그러면서 모든 게 변했습니다. 1960년 대에는 록 음악의 소비가 대학생이라든가 엘리트 계층에 국한됐어요. 그런데 1970년대 음악은 엘리트 계층의 소비에서 노동자 계층의 소비로 이어지는 다리가 됐습니다. 이제 노동자 계층까지 서방 대중음악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이것이 춤추는 문화를 통해 연결될 때, 나아가서 개인의 소비에서 집단의 소비로 발전할 때, 대중음악 소비의 민주화란 아주 위험한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련의 젊은이들은 서방 영화를 보고, 서양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그들이 속한 사회의 기존 가치를 거부할 준비가 돼있었습니다.”

서방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공산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 주민들은 때가 왔을 때,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었고요. 또 변화를 위해서 실제 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동유럽 전문가 콘스탄틴 플레셰코프 교수입니다.

“공산정권이 몰락하기 2년 전인 1989년 즈음부터 소련에서 실제로 정부를 상대로 한 봉기가 있었습니다. 대규모 항의시위와 파업, 시가행진이 벌어졌죠. 다행히 이런 시위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실제로 거리에서 민중 시위가 있었고요. 1991년에 소련 공산정권이 무너진 것 역시, 8월에 있었던 모스크바 혁명의 결과입니다.”

지난 2003년 5월, 영국 가수 폴 매카트니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비틀즈의 중심 단원이었던 폴 매카트니의 공연이 구 소련 땅에서 열린 건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요. 이날 공연을 보러 온 수천 명의 청중 가운데는 한 때 비틀즈 음악 단속에 앞장섰던 소련 비밀경찰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미국의 소리’가 마련한 특별기획 ‘문화, 세상을 바꾸는 힘!’ 오늘 ‘제1부, 냉전시대의 서방 문화’ 시간에는 서방 대중문화가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의 몰락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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