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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아들, 부친 회고록 출간


개혁주의 성향을 보이다 지난 1987년 실각한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장남이 최근 부친에 관한 회고록을 펴냈습니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실각과 사망은 1989년 6월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촉발했었는데요, 베이징 현지를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문) 먼저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장남이 펴냈다는 회고록,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답)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개혁주의 성향을 보이다 실각한 뒤 중국에서 사실상 금기 인물로 지목돼온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장남 후더핑이 펴낸 부친 회고록은 ‘중국은 왜 개혁해야 하나-부친 후야오방을 회상하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후더핑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이 책에서 특히 개혁의 필요성이라는 화두로 시작해 부친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개혁을 추진한 작업 중의 모습을 되돌아 봤습니다.

신화통신은 이 책에는 중국의 개혁 작업에 대한 역사적인 매력이 들어있다며, 특히 중국에서 갈수록 개혁이 더 큰 화두가 되어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장남이 쓴 회고록은 개혁과 관련해 중국 모델에 대한 답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는 1980년대 개혁지향적인 지도자로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노선을 옹호했었습니다.

문) 회고록이 개혁의 필요성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게 관심을 끄는데요, 이번 회고록에는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전•현직 고위 지도자들이 후 전 총서기를 회고하는 글도 담겨 있다는데,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아직 복권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데요?

답) 네. 이번 회고록에는 원자바오 현 총리, 그리고 후진타오 주석의 1기 집권 시절 국가부주석을 지낸 쩡칭훙 전 부주석, 그리고 후치리 전 당 중앙서기처 서기 등이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회고하는 글도 들어 있습니다. 후야오방이 총서기 재직 시절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으로서 직접적인 상하관계에 있었던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 해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의 인연을 추모한 글은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발표된 데 이어 이번 달 베이징문학월간사가 이 글을 2010년 최고의 산문으로 선정했습니다. 후치리 전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는 최근 중국의 진보적 월간지인 옌황춘추에 기고한 후양오방 추모 글에서 후야오방이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수용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선 지도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은 현직에 있었던 지난 2005년 후야오방 전 서기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추모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문) 원자바오 총리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글에서 뭐라고 언급했나요?

답) 원자바오 총리는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시절인 1986년 2월 당시 후야오방 총서기를 수행해 시찰했던 남부 구이저우성의 싱이 지역을 지난 해 4월 가뭄현장 시찰 차 다시 갔다 온 뒤, ‘싱이 지역에 다시 가서 후야오방을 기억하다’라는 제목의 산문을 썼습니다. 이 글은 곧바로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발표됐습니다. 원 총리는 후야오방 총서기를 수행해 싱이시를 포함한 구이저우성과 윈난성, 광시장족자치구 등의 빈곤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를 하러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며 후 전 서기는 당시 70살을 넘는 고령에도 빡빡한 일정을 강행하며 민중과 직접 접촉해 실정을 파악하고 국가정책에 반영했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지도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 위험은 실제 상황과 이탈하는 것이라던 후야오방 전 서기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고 적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앞서 지난 해 8월20일 선전시 경제특구 창설 30주년 행사를 전후해 7차례 정치개혁 발언을 했었는데요, 정치개혁이 보장되지 않으면 경제개혁의 성과는 없어지고 현대화 목표도 구체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문) 그런데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인물이 최근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그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전했다면서요?

답) 네. 정비젠 전 공산당 중앙당교 부교장이 바로 그 인물인데요, 정비젠 부교장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찬양하고 추억하는 내용의 글이 지난 달 25일 관영 신화통신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됐습니다. 지난 1981년에서 1986년까지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비서로 일한 정비젠은 이 글에서 후야오방은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따라 중국 사회주의와 현대화의 길을 가려 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후야오방은 생산력을 제약하는 계획경제 체제를 바꿔야 하며, 그 과정에서 세계 각 자본주의 국가의 현대적인 경영관리 방식도 차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 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하려면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정치체제까지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정비젠은 소개했습니다.

문) 후야오방 전 총서기는 1989년 6월 천안문 유혈 사태와 관련해 기피 인물로 분류된 이후 아직까지 복권되지 않았죠?

답) 네. 후야오방 전 총서기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1987년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밀려 났고 심장병을 앓다가 이듬해 1989년 4월 사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대학생들의 민주개혁 요구와 후야오방 전 총서기에 대한 복권 요구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공산당 지도부가 6월 초 인민해방군을 톈안먼 광장에 투입해 무력으로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이른바 톈안먼 유혈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시위를 촉발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그 동안 기피인물로 분류해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그를 추모하는 행사는 금지하지 않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 끝으로 한 가지 더 알아보죠. 이번에 부친 후야오방 회고록을 낸 후더핑은 후진타오 현 중국 국가주석과도 인연이 있다지요?

답) 네. 후더핑은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냈는데요, 1980년대 초반 공산당 중앙당교에서 같은 방을 썼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당시 공산주의청년단 대부였던 부친 후야오방에게 소개시켜 후진타오 주석이 정치지도자로 성장하는 배경을 만들어 준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밖에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부친인 시중쉰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 당시 중앙정치국 위원을 지냈고,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 사태 이후 축출된 후야오방 전 서기를 지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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