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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라종일 전 한국 국정원 차장] “아웅산 테러범 강민철은 남북 대치의 희생자”


라종일 전 국정원 차장이 2013년에 집필한 책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의 표지 (창비)
라종일 전 국정원 차장이 2013년에 집필한 책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의 표지 (창비)
버마에서는 지난 6일, 31년 전 아웅산 폭탄 테러로 숨진 한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건립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이 저지른 당시 테러 참사가 다시 주목 받고 있는데요, 희생자 외에 25년 간 복역한 뒤 사망한 북한 군 정찰국 소속 테러범 강민철도 새삼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강민철은 특히 지난해 관련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관심을 끌었는데요. 저자인 라종일 전 한국 국가정보원 1차장은 강민철이 흉악한 테러범이지만 남북 대립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현재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는 라종일 전 차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아웅산 테러 순국사절 추모비가 지난 6일 세워졌습니다. 우선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라종일 교수)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시던 분들이 그 곳에서 그렇게 무도하게 테러에 희생됐습니다. 그 분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운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기자) 작년에 테러범 강민철에 대한 책을 쓰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강민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라종일 교수) 말할 것도 없이 강민철은 흉악한 테러범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남북 간 갈등의 희생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특별한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이, 북한에서 태어나면 국가가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정보도 접하기 힘듭니다. 외부 세계에 전혀 무지하게 되죠. 어릴 때부터 국가에서 제공하는 강도 높은 정치교육을 받고 자라게 되죠. 이 사람은 특히 10대 말에 특수부대에 들어가서 심한 훈련 과정을 겪었는데, 그 사이에 자체적으로 외부 정보에 기초해서 행동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없었다고 봐야죠. 그런 면이 감안이 됐어야 했습니다.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기자) 버마와 한국의 당시 합동조사 결과 북한 인민군 강창수 소장의 지시로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정일의 친필 지령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구요. 북한 정권이 당시 왜 테러 공격을 한 건가요?

라종일 교수) 광주 사태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광주 사태라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거의 교과서적인 일입니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의 전략이란 것은, 남한의 혁명적인 역량이 성숙되는 것과 북한의 군사적 무력이 결부돼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의 변함없는 통일 략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광주 사태가 일어나니까 북한에는 거의 교과서적 문제였죠. 북한 지도부에게는 광주 사태에 대해 그냥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그렇지만 무력으로 개입하기에는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제일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이 북한에 개입하면 가만히 안 있겠다는 의지를 표시했어요. 그러니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테러였어요. 아웅산 테러는 북한이 4번 째 시도한 테러입니다. 그 이 전에 세 번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어요. 필리핀, 캐나다, 가봉에서 실패한 다음에 결국 버마에서 기회를 잡은 거죠. 결국 실패했지만요.

기자) 북한 정찰국 소속으로 밝혀진 테러범 3 명 가운데 신기철은 총격으로 즉사하고 리더인 김진수 소좌는 자백을 거부해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강민철은 자백을 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까?

라종일 교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째는 부상을 회복하는 도중에 아주 친절한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누그러졌을 겁니다. 두 번째는 처음으로 외부 세계 정보를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꼭 옳았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또 국제적 반응을 보니까 북한이 잘했다는 것은 하나도 없지 않았습니까? 남한 내부까지도요. 그리고 세 번째로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제 책에도 잘 설명돼 있지만 자기네들이 적한테 사용하기로 돼 있는 수류탄이 일종의 부비트랩이었어요. 그러니까 수류탄을 뽑으면서 바로 폭발했습니다. 다시 말해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네들을 죽이기 위해서 북한 당국이 조작한 무기였죠. 그래서 김진수와 강민철 모두 왼쪽 팔을 잃었어요.

기자) 테러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폭탄을 지급한 것이군요.

라종일 교수) 그렇죠. 죽도록 강요한 겁니다. 무의식 중에 자살한 것으로 만들려는 거였죠.

기자) 강민철 입장에서는 조국에 강한 배신감도 느꼈을 수 있겠군요.

라종일) 그렇습니다. 배신감도 느끼고 또 북한이 자기네들 존재도 부인하고 당시 도와주려고 한 게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자백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기자) 강민철을 접촉했을 때 그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라종일) 제가 직접 접촉한 것은 아니구요. 버마 정보부에 협력을 요청해서 처음으로 면회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외교관이 강민철을 면회 갈 수 있도록 했죠. 강민철은 15년 만에 감옥에서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난 겁니다. 그래서 한국 외교관이 음식물과 용돈 같은 것도 조금 도와주고 그랬죠. 첫 반응은 굉장히 반항적이었다고 그래요. 남한이든 북한이든 모두 증오를 보인 거죠. 자기 일생을 모두 망친 민족이다 하면서 강한 거부감과 증오 표시를 했답니다. 그러니까 우리 외교관이 당신 얘기를 들을 테니 내 얘기도 좀 들어봐라 하면서 친절하게 대하니까 마음이 침착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그리웠던 한국말을 15년 만에 처음으로 했으니까 반가웠겠죠. 결국 태도가 부드러워지고 우리 측 외교관을 형님으로까지 불렀다고 해요. 또 온몸에 부상당한 흔적들도 보여 주고 자기 개인 사정도 얘기하고 그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자) 강민철의 석방을 위해 많이 노력하셨고 한국행도 추진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라종일 교수) 당연하지 않았겠습니까? 우선 흉악한 테러범이지만 하나의 사람이고 동족이고 남북관계 갈등의 희생자입니다. 그 사람 한 명에게만 죄를 묻고 그 사람을 감옥에 넣은 채로 그대로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그런데 한국 정부는 강민철의 석방과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습니까?

라종일 교수) 대략 그랬을 겁니다. 그 때는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죠. 이른바 햇볕정책의 시기니까요. 그런데 강민철이 한국에 오면 북한과의 관계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있었고 일부에서는 너무 시간이 지나서 정보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있었던 것으로 그렇게 들었습니다.

기자) 북한은 당시 테러를 부인하고 한국 안기부의 조작이란 주장도 했는데, 그런 배경도 영향을 미친 겁니까?

라종일 교수) 그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데려오면 북한에서 아이고 거 봐라, 남한이 조작한 사건이다 하는 그런 얘기가 있을 수가 있었죠.

기자) 결국 강민철은 25년간 복역한 끝에 2008년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뒤 어떤 조치들이 있었습니까?

라종일 교수) 전혀 없었습니다. 25세에 감옥에 들어가서 25년 복역하고 죽었습니다. 장례식도 전혀 없이요. 죽음 다음에 제가 버마 관리들에게 시신 처리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화장해서 재를 버렸다고. 그래서 어디에 버렸냐고 하니까 모른다고 그저 강가에 뿌렸다고 했습니다.

기자) 아웅산 테러 30주년이었던 지난해 강민철에 관한 책을 쓰셨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라종일 교수) 우선 국가권력의 비정함입니다. 남쪽에서는 광주 사태가 있었고 북한에서는 자기들 대남사업, 혁명과 남한의 혁명적 역량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테러를 시켰죠. 강민철은 도구로 쓰였죠. 도구로 쓰인 다음 버려져 버렸어요. 그 다음에 더 흥미로운 것은 전두환 대통령하고 김일성 주석은 그 후 좀 지나 굉장히 친해졌어요. 상당히 친해서 서로 사절도 교환하고 선물도 교환하고 그랬죠. 아웅산 사건의 배경이 된 두 주역은 민족의 통일을 의논하면서 버마에 갇혀 있는 그 젊은 사람은 일체 언급이 없어요. 그 사람을 좀 도와주자는 말 한 마디도 없이 전두환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친해진 겁니다. 이런 일은 국가의 권력과 관련이 돼서 세계 도처에서 지금도 발생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민철을 통해 그런 국가권력의 비정함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끝으로 남북한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라종일 교수)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한국 민족들은 모두 통일을 바랍니다만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을 그저 강대한 국가를 만들겠다 하는 정치적 어젠다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통일을 휴먼 어젠다로 생각해 달라는 겁니다. 통일을 통해 여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또는 주변에 사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도 생활의 질이 더 좋아지고 도덕적 수준이 좀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휴먼 어젠다로서 인간의 문제에 관한 입장에서 통일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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