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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 퇴임


미-북 2차 고위급 회담을 마지막으로 퇴임한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미-북 2차 고위급 회담을 마지막으로 퇴임한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북 2차 고위급 회담을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보즈워스 대표가 재임한 지난 2년8개월 동안의 미-북 관계를 정리해 봤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최근 두 차례에 걸친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퇴임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대표단 귀국과 동시에 글린 데이비스 국제원자력기구 주재 대사가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뒤를 이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국무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6자회담 특사와 북한인권특사를 지휘하면서 국무장관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합니다. 국무부 내에 북한 문제를 다루는 동아시아태평양국이 있지만 이와는 별개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신설된 직책으로 보즈워스 대표가 지난 2년 8개월 동안 맡아왔습니다.

보즈워스 대표는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 문제를 담당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사무총장을 거쳐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미국 내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로 대북 관여정책을 지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만큼 보즈워스 대표의 역할은 큰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보즈워스 대표가 대북 관여정책에 나설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입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기에 보즈워스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려 했고,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한이 이를 모두 거부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북한은 2009년 4월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습니다. 보즈워스 대표가 중국, 일본, 한국을 차례로 순방하고 서울에서 러시아 외무차관까지 만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달 뒤 북한은 핵 시설 재가동에 이어2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이번에도 보즈워스 대표가 6자회담 참가국들을 순방하면서 대책을 협의했지만 핵실험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여기자 2명과 함께 귀국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2009년 말 보즈워스 대표의 평양 방문이 이뤄지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이 이어지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미-북 대화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이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신안보센타의 패트릭 크로닌 박사는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일찌감치 핵 활동을 중단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았다면 미국도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는 겁니다.

최근 들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남북 비핵화 회담에 이은 미-북 회담이 두 차례 열렸습니다. 보즈워스 대표가 취임 2년 반 만에 비로서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를 가진 겁니다.

하지만 보즈워스 대표는 2차 미-북 회담을 끝낸 뒤 그 동안 겸임해 왔던 터프츠 대학 학장 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직업외교관인 데이비스 대사로 교체한 것은 고위급 특사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인 소신을 밝힐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무부는 대북정책 특별대표 교체는 단순히 보즈워스 대표의 개인사정 때문이며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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