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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가족, 60년 만에 6.25 전쟁 참전 오빠 유해 신원 확인


미국은 오늘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곳곳에서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고, 전사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재향군인의 날 특집으로, 유전자 감식을 통해 60년 만에, 6.25 전쟁 참전 중 실종된 오빠의 유해 신원을 확인한 한 여동생의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유미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국 중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다이앤 쿨라 씨는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빠 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유명 가수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갈 거예요’를 자주 부르던 오빠는 한국전쟁에 파병됐던 1950년, 그 해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살 오빠 단의 전사 소식이 전해졌던 60년 전 11월의 늦은 밤을 당시 14살의 쿨라 씨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웨스턴 유니언 전보회사 직원이 밤 11시가 다 돼 문을 두드리는 순간, 카드 게임을 하던 가족들은 불길한 소식이 온 것을 직감했다고 쿨라 씨는 말했습니다. 전보회사 직원들이 부고를 전하기 위해 깜깜한 한밤 중에 주소를 찾으려고 손전등을 비춘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족들 모두가 얼어붙은 것 같았고, 오빠의 실종 전보문을 받아든 아버지는 오랫동안 문 앞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고 쿨라 씨는 회고했습니다.

제8기병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단 라포레스트 상병은 참전 직후인 1950년 10월 8일, 발목에 총알이 관통하는 부상을 입고 후송됐습니다. 이후 10월 18일 다시 전방으로 보내졌고, 2주 뒤인 11월 2일 북한 운산 근처에서 치열한 육탄전 끝에 적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쿨라 씨는 지난 2002년 미 국방부에 오빠의 유해를 찾기 위한 한 가닥 희망으로 유전자 DNA 샘플을 제공할 때까지, 오빠가 전쟁에서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짙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밝은 미소의 너무나 잘생겼던 오빠를 혹시나 어느 북한 여성이 몰래 구출해 숨겨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0년 1월, 라포레스트 상병의 유해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기적과 같은 소식과 함께, 국방부로부터 전해들은 오빠의 사망 경위는 너무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쿨라 씨는 말했습니다.

오빠는 포로로 잡힌 동료 미군 9명과 한국 통역관 1명과 함께 전장터 인근에서 1마일 떨어진 농가에 11월 16일까지 포로로 잡혀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북한 군 4명이 이들을 논으로 끌고나가 바닥에 엎드리도록 명령했고, 이에 불복하자 총으로 처형했습니다.

논으로 끌려가면서 19살 난 청년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쿨라 씨는 오빠가 최후까지 적들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라포레스트 상병의 유해 안장식이 거행된 10월 14일, 워싱턴 디씨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하루종일 폭우가 내렸습니다.

한 없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6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오빠를 보기 위해 쿨라 씨는 관의 뚜껑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3명의 오빠들과 달리 막내인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줬던 자상한 오빠. 빗자루를 집어 들고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면서 연가를 부르곤 하던 오빠가 살아서 돌아왔더라면, 아마도 유명한 가수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쿨라 씨는 말했습니다.

쿨라 씨는 오빠의 실종 소식으로 6남매 가족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빈자리가 생기면서,1950년 겨울 이후 가족들의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라포레스트 상병이 60년 만에 귀향한 지금,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는 가족들의 빈자리는 어느 정도 메꾸어 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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