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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년 만에 미국 시민 된 할머니, “이젠 자유로워”


최근 미국 시민권자가 된 한 멕시코 계 미국인 여성의 인생역정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미국 시민권을 손에 쥔 건 그가 미국에 불법 입국한 지 무려 1백1년 만인데요. 1백 살이 넘어 마침내 국적을 갖게 된 이 할머니의 사연을 들어 보겠습니다.

문) 오늘은 좀 색다른 주제네요. 멕시코 계 미국인 할머니 얘기죠?

답) 예. ‘율리아 가르시아 머츄리’라는 여성인데요. 바로 어제 (12일)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벗어났습니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미국 시민권을 받아 쥔 겁니다. 미국에 들어온 지 무려 1백 1년 만이라고 하는데요. 그야말로 키가 1백4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기다린 겁니다. 1백 년 넘게요.

문) 상상이 잘 안 가네요. 그럼 태어나자 마자 미국에 입국했다는 얘긴데요. 불법체류자였다고는 하지만 본인은 뭐 미국에 들어온 기억도 없겠어요.

답) 예. 갓난아기 때 엄마 품에 안겨서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넘었다고 하니까요. 그 날이 바로 1909년 10월 12일, 정확히 1백1년 전 일입니다. 멕시코 ‘마타모로스’라는 지역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리오그랜데 강을 건너 미국 텍사스 주 ‘브론스빌’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이 곳을 떠나지 않은 겁니다.

문) 분명히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건데 별 제재를 받지 않았나 보죠?

답) 그 때만 해도 지금 상황과 완전히 달랐다고 합니다. 국경을 지키는 주 방위군도 없었고, 세관국경보호청도 설치되기 이전이고, 또 삼엄하게 국경 인근을 정찰하는 헬리콥터도 물론 볼 수 없었던 때입니다. 요즘처럼 불법 입국자를 체포해서 본국으로 강제송환하는 조치가 이뤄지기 한참 전이었던 거죠.

문) 어머니하고만 미국으로 넘어온 겁니까? 다른 가족은 없구요?

답) 예. 홀어머니와 미국으로 건너왔구요. 학교는 3학년까지만 다니고 그 이후로는 죽 남의 집 빨래를 해 주며 생계를 잇는 어머니를 도우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16살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과 5년 만에 사별하구요, 두 번째 결혼으로 2 명의 자녀를 뒀습니다. 이 할머니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남편과 두 자녀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문) 예. 가족 얘긴 그 정도로 하구요, 궁금한 건 평생 적법한 체류 신분을 얻기 위한 노력은 안 한 건지, 그래도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한데요.

답) 한동안은 그럴 필요를 못 느꼈던 겁니다. 또 한 살도 되기 전에 미국으로 건너왔으니 당연히 스스로 미국인으로 여겼을 것이구요.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이 반정부 활동을 범죄로 법에 명시하면서 1940년 ‘외국인 등록법’을 제정하게 되는 거죠. 이 법에 따라 머츄리 할머니도 외국인 명단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문) 그러니까 살면서 한 번은 체류 신분을 조정한 거네요.

답) 예. 1941년 4월4일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적법 체류카드를 발급받은 건데요. 무려 70년 뒤에 이 작은 카드가 그녀를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게 해 줄 중요한 단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죠. 하지만 당시로선 카드에 명시된 만기일이 지난 뒤 계속 불법체류자로 살아온 겁니다. 자신의 국적과 체류 신분이 늘 궁금했지만 이민국에 그런 질문을 하기가 두려웠다고 합니다. 자칫 추방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거죠.

문) 미국의 이민자 관련법이 점점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다가 용기를 낸 계기라도 있나요?

답) 늘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고 싶긴 했지만 그러지 못 한 상황에서 지난 2008년 미국 정부가 이민법을 또 한번 강화합니다. 이 할머니로서는 서류 미비로 가끔 드나들던 멕시코 왕래 길마저 막히게 된 겁니다. 1백 살이 다 됐지만 조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땅에 속하지 못한다는 평생의 아쉬움을 풀어야 되겠다는 계기가 된 거죠. 결국 텍사스 브론스빌에 있는 이민국 사무실에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게 된 겁니다.

문) 미국에 넘어온 지 1백 년도 넘었고, 그 동안 적법한 체류 신분을 챙기질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답) 머츄리 할머니가 1941년도에 발급 받았다는 그 외국인 체류증명서가 결정적인 단서 역할을 한 겁니다. 낡고 낡은 작은 서류 하나를 70년 가까이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운데요. 이민국이 이를 근거로 워싱턴에 쌓여 있는 오래된 서류를 뒤지고 뒤져서 결국 할머니의 이름을 발견한 겁니다. 이를 통해 결국 생을 마감하기 전에 미국 시민이 되는 감격을 맛보게 된 거구요.

문) 예. 그야 말로 자기가 늘 살아온 땅에서 인정받는 데 평생이 걸렸네요. 이 경우엔 보통 사람들의 평생 보다 기다림이 훨씬 길었구요.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답) 예. 이 할머니가 한 돌도 안 돼 리오그란데 강을 거쳐 넘어온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금은 살벌하기 그지 없습니다. 미 당국의 무력 사용으로 멕시코인 사상자 수도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인데요. 2008년 5명, 지난 해 12명, 그리고 올해는 벌써 20명 가까이 됩니다. 하지만 멕시코인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도 꾸준히 미국 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이 3천73만 명 정도인데요. 미국 전체 인구의 12%가 멕시코 인이라는 겁니다.

진행자: 예. 넘어오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벌어지는 곳, 바로 그 곳을 1백 년 전에 무사히 건너왔지만 결코 평안할 수 만은 없었던 한 멕시코 계 미국 여성의 사연을 들어 봤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미국 이민 문제의 현주소를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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