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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길남 박사] "유엔 인권이사회 발언...각 국 대표들 호응"


28일 김정은에게 보내는 서신을 가지고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한 오길남 박사.
28일 김정은에게 보내는 서신을 가지고 제네바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한 오길남 박사.

북한에 억류된 신숙자 씨 모녀 문제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논의됐습니다. 부인과 두 딸을 북한에 두고 온 오길남 박사가 직접 공식 발언을 했는데요, 신숙자 씨 모녀가 북한에 강제 구금됐다고 지난달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가 결론을 내린 데 이어 나온 움직임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길남 박사를 직접 연결해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문) 유엔 인권이사회는 주로 정부 당국자들의 토론이 이뤄지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민간인 신분으로 이번에 공식 발언을 하셨거든요. 어떻게 그런 기회를 얻게 되신 겁니까?

답) 예, 한국 인권 단체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 UN 있는 유엔 워치(Watch)라는 인권 단체가, 제가 개인적으로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발언 해줄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NGO가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겁니다.

문)그런 기회를 주선해 준 그쪽 비정부기구, 그 전부터 오박사님의 가정 문제에 대해서 그쪽과 논의를 하셨습니까?

답)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인권단체들이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죠. 이런 활동으로 인해서 제 아내 신숙자와 두 딸의 운명에 관한 문제가 이슈가 된겁니다.

문) 전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데도 공식 발언 기회를 주선해 준 것이라면 그만큼 오박사님의 가족 문제가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겠네요.

답) 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마치 제네바가 인권이라는 상품을 엄청나게 많이 공부하는 시장 같았어요. 덥고 땀이 뻘뻘 나고 햇볓이 강렬하게 쬐는데도 대단했어요.

문) 현지 시각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28일 목요일에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언하신건데요, 얼마나 오랫동안 발언 기회를 주던가요?

답) NGO들이 여기 많이 참석을 했어요. 그쪽에서도 이 기회를 얻기 위해 많이 방문을 했기 때문에, 저한테도 특별히 특혜를 줄 수 없었지만 발언할 수록 해줬던 거죠. 그렇지만 시간은 2분 이상 넘기면 안된다고 해서 가까스로 잘 맞춰서 했습니다.

문) 짧은 시간에 중요한 이야기를 다 하시려면 강조하신 점이 있을텐데, 주로 어떤 점들이었나요?

답) 세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는데, 유엔 인권 이사회의 임의적 구금이라는 주제로 한 실무 그룹이, 말하자면 제 아내 신숙자와 저희 두 딸 혜원이와 규원이가 11살, 9살이 되던 때부터 임의적으로 구금이 됐다, 하는 것을 선언을 했죠.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죠. 공식적으로 확인 해 주고 선언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제 아내와 두 딸이 요덕 수용소에 수감된 이유를 명확하게 해 준거죠. 저희가 남한의 지식인 두사람을 북쪽으로 유인해서 납치하라는 지령을 거부하고 다시 독일로 돌아온 것 그 이유를 가지고 말하자면 제 아내와 두 딸을 요덕 수용소에 끌고 가서 그 곳에서 지금까지 약 25년 동안 가두어 버렸던 거죠. 내가 금년에 나이가 70이 됩니다. 그래서 유엔 인권이사회에 와서 유엔이 저희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것을, 그리고 우려를 표명 해 준 데 대해서 감사하다는 것, 숭고무구한 마음으로 죄도 없는 연약한 여자들을 풀어주게끔 해주는 데 노력을 더 해주십사,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죠.

문) 공개 발언을 하신 다음에 그 회의장 반응은 어땠나요?

답) 많은 국가에서 온 여성들이 관심도 보내고 저의 발언에 대해서 동정을 보냈어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와서, 여자 분들은 와가지고 제가 악수도 청하고 목례도 하고, 특히 여성분들의 관심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분들 보다도. 그 회의장의 여성분들은 거의 모두 인사를 보냈습니다.

문) 다른 나라의 비정부기구들하고 오박사님 가정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협력하거나 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가 없었습니까?

답) 거기에 대해서는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생각도 좀 해보고, 거기에 저희 가족의 송환대책위원회가 곧 발족되고, 벌써 일본 거류 민단에서는 돈을 성금을 천만원이나 모아서 왔는데, 나는 만나지도 못하고 여기 제네바에 와 있게 됐습니다.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우선 국내로 돌아가서 여러 검토를 하고 여러 논의를 하고, 내 혼자서 결정을 할 수도 없고. 아주 거족적 차원에서 진행 될 모양인 것 같은데.

문)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 북한 대표부가 있지 않습니까? 북한 대표부 쪽하고 이번에 직접 접촉할 기회는 없으셨어요?

답)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북한 대사관을 방문했었죠. 방문해서 초인종을 몇 차례 눌렀으나, 아마 그 안에서 보고 있었나봐요,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를 거기 편지함이 있으니까 거기에 넣고, 다시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 참석했죠.

문)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답) 그 내용은 제 가족들을 풀어주는 것을 계기로 화해 해서 남북간의 문을 활짝 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문) 오늘 긴 시간 동안 말씀 고맙습니다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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