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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6.25전쟁 62주년] 인천상륙작전 3 – 한국인이 바라보는 맥아더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헌화행사.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헌화행사.

6.25 전쟁 중 ‘크로마이트작전 (Chromite)’이란 이름으로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은 미군이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킨 탁월한 군사작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유엔군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전략적 직관과 신념이 절대 무모한 일이란 비판을 샀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지적합니다. 6.25 전쟁 62주년을 맞아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내 드리는 특집방송,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62년 전 상륙작전이 벌어졌던 인천의 월미도와 상륙작전기념관의 표정을 전해 드립니다. 서울의 황진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6.25 한국전쟁 62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5일,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자리잡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한국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온 많은 시민들로 붐볐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체험한 참전용사에서부터 지나온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알고 있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감회가 교차했습니다.

[녹취: 기념관 방문객] “오늘 6.25날이니까 우리가 군대 나가서 여기서 와서 기념관을 관람하고 있는 거야. 옛날을 모르는 사람들도 얘기도 해주고. 여기 여섯 차가 왔어. 여섯 대가.”

[녹취: 기념관 방문객]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데요, 뜻 깊은 날이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있다고 해서 방문해봤습니다.”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은 기념관 측에서 준비한 편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녹취: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어린이프로그램 현장] “싸워주신 분들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편지 썼죠. 우리. 자, 다 쓴 사람”

이 기념관은 지난 1983년 인천시의 지원과 더불어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건립돼 지금까지 1년 365일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련된 여러 전시물들은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동맹국과의 유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김인숙 관리소장입니다.

[녹취: 김인숙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관리소장]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통일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입니다. 또 우리나라를 도와준 참전국가와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문화적 차원에서 기념하기 위해서 1983년 5월 1일에 착공해서 84년 9월 15일에 준공과 동시에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매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6월 25일과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됐던 9월 15일, 기념관에 모여 전우의 넋을 기립니다. 또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 안보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80대 중반을 넘어 거동마저 불편해진 노병들. 하지만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긍심은 62년 전 그 때와 다를 바 없습니다.

[녹취: 6.25 참전용사] “인천상륙작전에서 처음 팔미도 등대에 불을 붙인 것이 우리 부대원들, 불빛이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이 신호를 받고 인천상륙작전을 한 거에요. 맥아더 장군이 아니었으면 지금 여기 공산화가 됐죠.”

참전용사들에게 있어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입니다.

[녹취: 6.25 참전용사] “맥아더 장군은 정말 우리 대한민국에는 존경 받을만한 큰 인물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인천상륙을 진두지휘 해서 압록강까지 진격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 그 굳은 의지가 우리 대한민국을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기반을 조성해주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을 존경하는 겁니다.”

기념관 방문객들은 대체로 맥아더 장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시민] “인천상륙작전은 제가 정말 좋게 보고 있어요.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중공군을 무찌르고 조금 위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사실 내려왔잖아요. 맥아더 장군 되게 존경스럽죠.”

[녹취: 시민] “참 고마운 분이라고 그 맥아더 장군, 월미도 작전 없고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을 못했다고. 근데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어.”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녹취: 시민인터뷰] “맥아더장군이 한국전쟁 업적에 대해서는 인정할만하지만 그렇게까지 우상화하고 신격화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녹취: 시민인터뷰] “글쎄 뭐, 그렇게 호평만 하는 건 아닌 걸로 그런 얘기를 조금 하시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젊은 세대들은 그런 생각이 많은 것 같은데…”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은 1957년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2002년 7월 경기도 양주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이 동상에 대한 철거논란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각기 철거와 보존을 주장하는 단체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이 점차 격화되며 맥아더 동상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갈등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녹취: 시민인터뷰] “동상철거, 해야죠. 미국 쪽에서 그렇게 영웅시 되는 사람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몇 십 년이 지난 후까지도 동상 만들고 기념관 만들고 할 필요 있나요?”

[녹취: 시민인터뷰]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그 업적을 기리면서 동상까지 세운 것만 봐도 큰 업적을 남겼다고 봐요.”

[녹취: 시민인터뷰] “철거하기에는 우리나라가 한미수교 관계도 있고 해서 그것보다는 보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학계와 재야에서는 6.25 한국 전쟁과 맥아더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래 지향적이고 건전한 역사관 확립을 위해서 한국사회가 맥아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현대사 전문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입니다.

[녹취 :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당시의 상황 속에서 ‘맥아더 장군의 역할을 어떻게 봐야 되는가’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또 체계적으로 조명한 연구는 많지 않은 것 같고요. 그런 부분들이 사실 어떤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을 제공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분단과정에서 냉전적인 상황들이 계속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자료에 근거한 핵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상징적 인물로 한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마다 불거지는 맥아더 장군의 전시업적에 관한 평가 논란과 동상철거 분쟁 또 이에 뒤따르는 이념갈등은 분단상황이 계속되는 한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황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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