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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1] 막 내린 김정일 시대 – 파탄 난 경제


폭우로 침수된 북한 농촌 마을 (자료사진)

폭우로 침수된 북한 농촌 마을 (자료사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그의 17년 철권통치도 막을 내렸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막 내린 김정일 시대를 경제와 핵, 정치, 안보, 그리고 인권 등 3차례에 걸쳐 조명해 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이연철 기자가 파탄난 북한경제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조선중앙TV: “어버이 수령님의 이 교시가 마지막 교시가 될 줄 우리 어찌 알았겠습니까?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 주시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994년 7월 8일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자 권력을 물려 받았습니다. 1974년에 후계자로 공식화 된 지 20년 만에 마침내 김정일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맞은 김정일 위원장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북한경제는 1980년대 말 구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과 96년에는 대 홍수 같은 자연재해까지 이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오히려 북한경제를 더 큰 수렁에 빠뜨렸습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가 닥친 것입니다.

북한영화 한 장면: “우리는 방금 희생된 동지의 시신을 언 땅에 묻었습니다. 피눈물을 뿌리며 시작한 이 고난한 행군이 이처럼 가슴 아픈 희생을 가져 오리라고 생각해 본 사람은 없었고…”

북한체제 선전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의 끔찍했던 북한의 식량난을 생생히 전하는 영화로 평가되는 ‘자강도 사람들’의 한 장면 처럼, 당시 북한 전역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이 시기에 수십 만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 의회 산하 의회조사국의 딕 낸토 연구원은 김정일 시대 최악의 순간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을 꼽았습니다.

사회와 경제를 개방해 외부사회의 지원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주민들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 행렬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북한은 6년 만인 2000년에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외부세계의 대규모 원조에 의한 것일 뿐 붕괴된 경제의 기반이 재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2년, 북한은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사상 유례 없는 경제개혁 조치에 나섰습니다. ‘7.1조치’로 불리는 이 조치의 핵심은 임금과 물가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또 금강산 관광특구와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하는 한편, 종합시장 개설과 국영상점 임대, 개인상업 허용 등 유통 분야의 개혁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 조치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시장이 확산되는 등 체제위협 요소가 나타나자 2005년부터는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특히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 해인 2009년, 경제개혁 보다는 계획경제를 강조하는 움직임을 강화했습니다. 2009년 4월20일 시작된 대중 노력동원 운동 ‘1백50일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조선중앙TV: “모두가 1백50일 전투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

또한,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커져가는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고 화폐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식량 가격과 환율이 폭등하고 물자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등 후유증이 극심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화폐개혁을 경험했던 탈북자의 말입니다.

“쌀 값이 30원까지 쭉 내려갔다가 일주일 만에 40원, 50원으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쭉쭉 올라가서…”

이 밖에 북한에서는 화폐개혁 실패의 여파로 달러화 등 외화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됐고, 물가 상승으로 서민층의 실질적인 소득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빈부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엔 은 주민의 66%가 끼니를 거르고 있다며, 특히 식량난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리는 영아와 유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북한은 현재 외부 원조를 받지 않고는 당면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 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북한이 경제 개혁개방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김정일 시대 경제정책의 최악의 실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라도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핵 야욕과 선군정치를 앞세웠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2005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으로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하면서 국제 경제에서 점점 더 고립됐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주민들에게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뒤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그 같은 약속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외부세계의 지원 없이는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를 파탄시킨 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해 드리는 특별기획,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김정일 시대의 북한 핵과 정치, 안보 현안들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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