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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전 종군기자 데이비드 던컨 "아직도 분단은 비극"


한국전쟁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 (자료사진)

한국전쟁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 (자료사진)

미국의 시사 전문 주간지 `타임’은 지난 해 11월 보도사진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 창간 75주년을 맞아 특집기사를 게재했습니다. 타임은 이 특집기사에서 ‘라이프’ 잡지의 사진기자였던 데이비드 던컨 씨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로 평가했습니다. 올해 96살인 던컨 씨는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전쟁의 비극을 서사적으로 포착한 생생한 사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던컨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문) 던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61년 전 한국전쟁에 어떻게 참전하게 되셨는지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당시 저는 라이프 잡지 사진기자였습니다. 방콕에 거주하다가 1950년 봄 일본 예술에 관한 기사를 위해 도쿄로 가서 2~3개월간 사진촬영 작업을 하고 있었지요. 그 해 6월 25일 일본인 친구의 초청으로 한 어촌 마을을 찾았는데, 그 친구의 또 다른 친구가 일본 말로 전하는 얘기를 통역을 해서 들으니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표정에 충격이 역력했어요. 저는 바로 도쿄로 돌아와서 한국 부산행 비행기를 탔고, 바로 한국전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문)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에도 많은 전쟁에 종군기자로 활약하셨지요?

답) 미 해병대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에 참전했지요.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에서 사진을 찍었구요, 1945년 미주리호 함상에서 거행된 일본의 항복조인식을 촬영했습니다. 그런 다음 라이프 잡지의 사진기자로 팔레스타인 등 중동 전 지역에 파견됐어요.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파견됐습니다.

문) 종군기자들은 전장터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나요? 상당히 위험할 것 같은데요?

답) 북한에 들어갔을 때 한국 군과 일주일 정도를 함께 했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저는 대부분 미 해병대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이 일은 진정으로 군인이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라이프 잡지의 사진기자였던 동시에 미 해병대의 사진기자였습니다. 해병대는 전우가 총격으로 전사하면 시신이라도 반드시 구출해 나옵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이죠. 서로가 서로를 알고 똑같이 생활하니까 바로 옆에 있는 동료 전우에 대한 완벽한 신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저는 등 뒤에서 총을 맞을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답) 한국전쟁 참전으로 수많은 미군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미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절대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참전을 결정했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지지도가 나중에 미국인들 사이에 크게 떨어졌지만 저는 그가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중국의 역사에 대해 군 지휘관들보다도 더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선생님의 한국전쟁 사진 중에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한 젊은 미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이 생각납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답) 낙동강 전투 때였습니다. 연합군이 큰 공격을 받아 엄청난 사상자가 났어요. 사진의 주인공은 전우를 잃은 레오나드 헤이워스라는 22살의 미 해병대 상병인데요, 전투를 계속하기 위해 탄약을 더 구하러 왔는데, 탄약이 모두 소진된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눈물인 것이죠. 3주쯤 후인가 이 사진이 실린 라이프 잡지 표지를 헤이워스 상병에게 보여주었는데요, 6피트가 훨씬 넘는 훤칠한 키에 유명한 영화배우 엘로 플린처럼 생긴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이 가나요? 헤이워스 상병은 묵묵히 있었는데, 옆에 있던 한 노병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고 말이죠. 헤이워스 상병은 바로 그 다음 날 적의 저격으로 전사했습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목이 메입니다.

문) 장진호 전투 사진을 보니까 눈 덮인 산악 지대가 정말로 많이 추워보이는데, 얼마나 추웠나요?

답) 영하 40도 이하였어요. 카메라를 녹이려고 옷 속에 넣었지요. 60년 전이니까 디지털이 아니라 인화를 하는 코닥 필름을 사용했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필름이 바삭한 과자인 '프레첼' 처럼 부서졌어요. 그 때문에 촬영한 사진을 많이 잃었습니다.

문) 미 해병 제1사단이 북진 중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후 가까스로 탈출해, 함흥 흥남 철수를 전개할 당시를 회고해 주시겠습니까?

답) 연합군은 중공군을 막기 위해 흥남부두를 폭파시켰습니다. 철수하는 미 군함을 얻어타고 부산으로 가려고 몰려든 북한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지요. 북한 피난민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저는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마지막 미군 수송선이 떠난 후 폭파되는 흥남부두를 촬영했습니다. 조그만 강아지 3마리와 흥남 해변에 홀로 남았던 저는 그 곳에 남은 마지막 유엔 군이었습니다.

문) 한국전쟁 사진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사진을 꼽으시겠습니까?

답) 전쟁이 끝나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저는 세계적인 대화가인 피카소의 사진을 약 17년에 걸쳐 찍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피카소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5개 손가락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어떤 손가락을 가장 좋아할 것 같냐고 반문하더군요. 모두가 다 똑같다는 것이죠. 제 사진도 모두가 다 제 삶의 일부입니다. 각각에 독특한 상황과 대상들이 담겨 있어요.

문)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이십니까?

답) 비극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두 나라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볼 때 북한이 얼마나 부러워할 지 생각해 보십시요. 한반도가 아직도 분단 상황인 것은 비극입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사진기자 데이비드 던컨 씨와의 인터뷰를 전해 드렸습니다. 인터뷰에 유미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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