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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김영목 전 KEDO 사무차장] "북, 핵실험 보다 대남도발 노려"


김영목 전 KEDO 사무차장 (자료사진).

김영목 전 KEDO 사무차장 (자료사진).

북한 핵 문제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새 헌법에서 핵 보유국을 자처하는 한편 핵 억제력까지 강조하면서 핵 개발 의지를 거듭 다지고 있는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풀리지 않는 북 핵 문제를 과거 대북 협상에 직접 나섰던 한국과 미국 정부 관리들의 경험을 통해 재조명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김영목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사무차장의 진단을 들어보겠습니다. 김 전 사무차장은 1차 북 핵 위기 당시 한국 외교부 북미과장을 지냈고,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이란 대사를 거쳐 현재 뉴욕총영사를 맡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문) 김영목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답) 네, 안녕하십니까?

문) 북 핵 문제, 일반적으로 1차 핵 위기라고 하면 92년과 93년 이 때를 원점으로 잡습니다. 당시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시설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NPT,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한 바로 그 때를 가리키는데, 당시 한국 정부가 어떤 대응을 검토하고 있었고 또 미국과 한국간에는 어떤 대책이 논의되고 있었는지 얘길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답) 당초 미국 측에서는 군사력 동원이든지, 강력한 제재나 이런 것들을 큰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저희와 협의를 통해서 결국은 정리가 됐는데, 저희들은 제재가 상당히 실효가 있을 것으로 보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로드맵을 채택했고, 그것을 기초로 한국과 미국이 협조하게 됐습니다.

문) 그렇게 해서 도출된 제네바 합의, 물론 중요한 성과라는 평가가 많습니다만, 그 뒤에 북 핵 문제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고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많다, 이런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협상의 성과나 어렸웠던 점, 그리고 아쉬웠던 점을 다 떠올려 주신다면요?

답) 제네바 합의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락, 핵 시설 불능화, 사용후 연료봉의 대외 반출 등이 담긴 핵 분야와 관련된 합의가 있고, 그 다음에 정치적으로 미-북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정치적 분야가 있는데, 이 때 미-북 관계 정상화와 이와 병행해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는 그러면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대가를 뭘로 할 것이냐 부분인데 그것이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과 1천 메가와트급 경수로 2기의 건설, 이렇게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겉으로 나타난 합의지만 북한이 오랫동안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유엔사 폐지를 요구해 왔었는데 이런 요구도 협상 동안 상당히 강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돌이켜보면 미-북 관계 정상화라는 것이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적 백업을 받아야 하는데 북한이 그렇게 미-북 관계 정상화로 가는 행동을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 부분이 잘 진행이 안됐고, 두 번째는 그 당시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경수로 건설과 IAEA 사찰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에 있어서 IAEA 전면사찰을 수락한다는 부분이 경수로 건설 상당히 뒷 쪽 부분에 합의됐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문) 북한이 이 시점부터 뭔가 은밀한 작업을 하는게 아니냐, 그런 의구심,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계속 해 왔다는 게 2002년 알려지구요. 북한이 합의는 합의대로 해 놓고 의도적으로 비밀 핵 프로그램을 추진한 건지, 물론 미국과 한국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당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답) 저희가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찰을 늦추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덜 내놓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늘 이 사람들이 무엇을 은닉하고 비밀리에 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생각했죠. 다만 당시 북한이 갖고 있던 위험성은 흑연감속로,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온 플루토늄이 가장 위험한 요소였기 때문에 그 연료봉의 처리, 철회한 다음 해외 반출,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고 그 연료봉을 만들어 내는 시설을 불능화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북한은 거기 협력하는 듯 하면서 또 다른 프로그램에 손을 댔다고 보는 게 옳다고 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성찰을 한다면 저희가 북한과 협상하고 관련된 이행 프로토콜을 진행하면서 연료봉의 반출까지 저희들이 손대지 못하고, 사실은 반출하기로 합의 해놓고 실제로 거기까지 그렇게 열심히들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해도 북한은 처음부터 다른 프로그램을 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게 더 맞는 분석일 것 같습니다.

문) 그런 아쉬운 점이 당시에 만약 극복이 되고, 가정입니다만, 제네바 합의가 그대로 이행돼서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북한 경수로 사업을 정확히 이행해 나갔다면 현재 상황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답) 그것도 사실 굉장히 어려운 가정이죠. 그러나 제가 북한과 협상도 많이 하고 경수로 사업 때문에 현장에도 가고 했던 사람으로서 경험으로 보면 경수로 사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북한 사람들하고 외국 매니저들, 특히 한국에서 간 매니저들하고 접촉이 많았고, 의사소통도 많았고, 그리고 같이 일을 했고, 그러면서 한국이 갖고 있는 기술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용의가 많이 퍼지고,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동포들이 갖고 있는 경제력이나 기술력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런 나름대로의 효과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의 핵 포기를 완전히 보장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죠. 다만 합의가 문자 그대로 충실히 이행 안 된 건 아쉬운 대목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이 자기가 한 합의를 각국에서 백업을 못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북한이 한 행동, 제네바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수정, 특공대를 침투시킨다든지, 서해안에 계속 무장세력을 침투시켰다든지, 미사일 발사를 계속 한다든지, 여러가지로 북한에 대한 미약하나마 작은 신뢰조차 북한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런 자신들 행동 때문에 이런 것들이 이행되지 못했지 않나 생각됩니다.

문) 최근 상황, 그러니까 지난 4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고 또 최근에는 새 헌법에 스스로 핵 보유국이다, 이렇게 명시했습니다. 거기다 3차 핵실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는 상황이구요. 북측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아울러 이에 대한 미국과 한국 등 관련국들의 핵 문제 해결 노력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그 진단도 함께 내려주시죠.

답) 우선 3차 핵실험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보고 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핵실험을 당장 강행하는 것 보다 여러 가지 저울질이 북한 입장에서 맞다고 보구요. 국제적으로 부담스러운 핵실험 보다는 일단 한국을 압박하고 한국을 도발하는 쪽에 좀 더 치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 문제는 우선 각국이 똑 같은 생각과 똑 같은 정책을 하도록 협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국민들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고 인근인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잘못될 경우에 굉장히 위험한 사태로 갈 수 있다는 걸 중국을 비롯해 주변국들이 잘 알아야 되고, 그런 선상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 본격적인 일로 생각해야지, 시간이 되면 그 때 한번 만나보자, 시간 있다, 이런 식의 자세들 갖고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긴박하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각국 지도부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예. 20년 가까이 지속돼 온 북 핵 문제, 짧은 시간에 돌아 봤는데요. 김 대사님, 오늘 여러 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답) 예, 감사합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김영목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사무차장으로부터 1차 북 핵 위기 전후 상황과 현 북 핵 문제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습니다. 내일은 2차 북 핵 위기 당시 미국의 대북 협상단을 이끌었던 제임스 켈리 전 국무무 동아태 차관보와의 인터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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