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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남미 여행 동반자 그라나다 사망


쿠바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함께 남미대륙 횡단여행에 동행했던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지난 주말 사망했습니다. 미국 등 세계 언론들은 그라나도의 사망 소식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요, 이연철 기자와 함께 그라나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먼저 그라나도의 사망 소식부터 간단하게 정리해 주시죠?

답) 그라나도는 지난 5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88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쿠바 관영 언론은 그라나도가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유해가 유언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쿠바, 베네수엘라에 뿌려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문) 그라나다가 쿠바에서 사망했지만, 원래 아르헨티나 사람이죠?

답) 그렇습니다. 그라나도는 1922년 8월8일, 아르헨티나의 에르난도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스페인 이민자 출신으로 철도회사 서기였던 아버지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라나도는

코르도바대학에서 생화학과 약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라나도의 아버지는 노조 활동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아들인 그라나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43년에는 학생 시위에 적극 가담했고, 그 결과 투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문) 그라나도는 쿠바 혁명의 영웅인 체 게바라와의 우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요,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언제인가요?

답) 그라나도가 체 게바라를 만난 것은 코르도바대학을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체 게바라는 의학도였습니다. 나이는 그라나도가 체 게바라 보다 6살이나 많았지만, 두 사람은 지적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유머, 남미대륙 탐험에 대한 열망 등을 공유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문) 방금 말씀하신 대로 남미대륙 탐험을 열망하던 두 사람이 결국은 실제로 여행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게 언제인가요?

답) 1951년 12월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라나도의 오토바이를 타고 코르도바를 출발했습니다. 이후 8개월 동안 남미대륙을 횡단하면서 칠레와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등을 둘러봤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일기를 썼는데요, 이 일기는 이후 '모토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고, 2004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문) 젊은청년 두 사람이 8개월 동안 남미 전역을 돌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29살의 그라나도와 23살의 체 게바라 두 사람에게 남미대륙 횡단여행은 남미의 정치적 현실에 눈을 뜨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두 사람은 남미 사람들이 극도의 빈곤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값싼 기본적인 의약품이 없어 죽어 나가는 참혹한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이 같은 경험들은 두 사람이 미래의 직업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요, 체 게바라는 남미대륙 여행을 계기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됐고, 그라나도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과학을 추구했습니다.

문) 두 사람의 여행은 베네수엘라에서 끝이 났는데요, 거기서 헤어진 것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그 때가 1952년 7월이었는데요, 체 게바라는 의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1953년에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체 게바라는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1959년에 마침내 쿠바 혁명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그라나도는 체 게바라와 헤어진 뒤 계속 베네수엘라에 머물면서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라나도는 1955년에는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 때 프랑스와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도시들을 여행했구요, 나중에 귀국해 결혼했습니다.

문) 그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이 쿠바였죠?

답) 그렇습니다. 이 때가 1961년이었는데요, 베네수엘라에서 헤어진 지 8년 만이었습니다.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 영웅이 된 체 게바라가 그라나도를 쿠바로 초청한 것인데요, 그라나도는 산티아고 시에서 의과대학을 창설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바나로 이주해 학생들에게 생화학을 가르치는 한편, 연구활동도 벌였는데요, 그 후 지난 주말 사망할 때까지 계속 쿠바에서 살았습니다.

문) 그라나도와 체 게바라 사이에 이견은 없었나요?

답) 체 게바라는 남미의 사회개혁을 위해 게릴라 전쟁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라나도는 체 게바라의 그 같은 확신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체 게바라가 1967년 사망할 때까지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라나도는 노년에 체 게바라를 회상하면서, 그는 찬양의 대상인 신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따라야 할 전범이 되는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쿠바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함께 남미대륙 횡단여행에 동행했던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지난 주말 사망한 것과 관련한 소식을 자세히 알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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