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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가입 10여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 보이는 오스트리아  - 2005-02-27


유럽의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는 올해에 세가지 중요한 역사적 행사의 기념일을 맞이합니다. 첫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 기념일이고, 두번째는 연합군 점령이 끝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고 또 세번째는 오스트리아의 유럽연합 가입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국의 소리] 기자가 유럽 역사의 오랜 소국, 오스트리아의 그간의 발전상을 재 조명하는 보도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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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스트리아라고 하면, 우선 빈의 우아한 월츠와 전 영화배우로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먼저 머리에 떠오릅니다.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작은 이 공화국은 전통이 강하지만, 또한 혁신적인 경향도 강한 나라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배출했으며, 최근에는 노벨상 수상 여성 작가 엘프리데 예리네크를 배출한 나라입니다. 에리네크는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일부 오스트리아 인들은 인간정신상태에 대한 억압적인 사회의 부정적인 효과를 그린 소설 [피아노 교사]등 그의 작품을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논란많은 작가가 오스트리아 문화를 대표한다는 데 대해 분개한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오스트리아 간의 교육 문화 교류 계획인 [풀브라이트 계획]이 운영하는 [오스트리아-미국 교육위원회]의 로니 존슨 씨는 무도회의 계절 같은 오스트리아의 문화적 전통행사들을 보게 되면, 1월 1일 설날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의 무도회까지 빈 시는 물론, 오스트리아 전역 주요단체들에서 공식 무도회나 가장무도회가 끊이지 않는 다고 지적합니다.

오전에 양털 자켓과 블루진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은 수백년전에 그들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월츠춤을 추기 위해 저녁이 되면 검은 넥타이의 정장과 긴 가운을 걸치게 됩니다. 이것이 또한 오스트리아의 모습입니다.

한때 광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세력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는 제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작은 공화국으로 축소됐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38년에 나치 독일에 합병됐고, 1945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다가 1955년에 독립을 하게 됩니다. 뉴올리언스대학의 귄터 비쇼프 역사학교수는 지난 반세기동안 오스트리아가 중립국으로 남아 냉전시대에 동서진영의 교차점이 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1955년부터 냉전의 종식과 소련의 붕괴와 1990년대의 발칸위기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는 엄격한 중립을 지켰으며, 또한 중립적인 지위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즉, 오스트리아는 특히 1961년에 수도 빈을 케네디와 후르시초프의 회담장소로 제공했고, 1979년에는 브레즈네프와 카터가 전략무기제한협정인 [SALT II 협정]에 서명하는 등, 동서 냉전시대의 중재 수단으로 이용됐습니다.”

비쇼프 교수는 1989년 소련의 붕괴로 오스트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 신청을 해 결국 가입하게 됨으로써 유럽 세계가 엄청나게 변모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일부 오스트리아 인들은 오스트리아의 중립 포기를 비난하고, 오스트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이미 전에 세계에서 가장 번영된 나라의 하나로 올라서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귄터 비쇼프 교수와 같은 분석가들은 인구 800만이 안되는 작은 나라는 자체에서 생산되는 것을 모두 소화할 수가 없으며, 회원국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동유럽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투자는 정부가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을 통해 동유럽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오스트트리아 기업들에게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지 10여년 만에 오스트리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역 동반자의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오스트리아에 있어서 축하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념일의 하나로, 나치의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일이 오는 5월에 있습니다.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은 린츠 시에 가까운 집단수용소에서 10여만명의 인명들이 희생된 것을 회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의 나치시절의 과거를 직시하고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목적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오스트리아는 젊은 청소년들을 위한 [홀로코스트], 즉 인종대학살 교육 서비스인 [게뎅크딘스트]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13년의 역사를 가진 이 조직은 전세계의 홀로코스 관련 기관에 젊은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합니다. 스물일곱살의 경제전문가인 스테판 스퇴프 씨는 최근 워싱턴 DC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서 스습요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중의 하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나치 오스트리아를 탈출한 유대인들과 연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를 여러가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음을 발견한다면서, 스퇴프씨는 과거에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했던 유태인들은 오스트리아에 관해 상상하기 어려울만큼매우 끔찍한 기억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오스트리아가 50년, 60년 전에 탈출했던 나라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 스퇴프 씨가 하는 일의 하나입니다. 다른 젊은 오스트리아 인들처럼 스테판 스퇴프 씨는 그가 이런 과업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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