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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처칠 박물관] 개관 - 관람객 쇄도  - 2005-02-25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경의 생애와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처칠 박물관]이 최근 런던에서 개관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히기도 했던 윈스턴 처칠 경 박물관에 관해 좀더 자세히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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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 방문객들은 21세기의 최첨단 기술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20세기 위대한 인물인 처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의 모습들과 소리들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경의 생애와 관련된 170여개 전시품들은 1,000평방미터의 전시장에 진열돼 있습니다. 이 곳은 독일과 영국간 전투가 발발할 당시 나치 독일 전폭기들이 런던에 대공습을 감행한 가운데 지하 벙커에서 처칠 경과 그의 각료들이 각료회의를 열었던 전시 각의실의 일부로 새로 개관됐습니다.

처칠 경의 역사가인 데이빗 레이놀즈 씨는 이 박물관은 방문객들에게 단순히 윈스턴 처칠이 그들의 삶속에서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존재하고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감명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레이놀즈 씨는 윈스턴 처칠 경은 영국 현대사의 가장 큰 위기때 영국을 이끈 지도자였으며, 물론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위기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레이놀즈 씨는 영국과 유럽 및 프랑스간 관계는 1940년에서부터 생겨났고 미국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제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지도자였던 윈스턴 처칠 박물관 개관식에는 처칠 경의 손자이며, 할아버지와 똑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윈스턴 스펜서 처칠 씨도 참석했습니다. 처칠 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이 박물관이 개관됨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처칠 경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줄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합니다.

스펜서 처칠 씨는 오늘날 유럽이 자유롭게 살게 된 것이 영국과 영국인들의 용기 덕분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젊은 세대가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1940년 여름에 영국이 독일에 항복했더라면 나치의 갈고리 십자 기장이 웨스트민스터 궁과 버킹헴궁은 물론이고 유럽의 모든 수도를 뒤덮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는 처칠 경의 많은 녹음 연설 가운데는 1940년 6월 18일, 의회에서 행한 유명한 [완벽한 시간] 연설도 포함됩니다. 프랑스가 나치 점령하에 들어가고, 영국이 아돌프 히틀러의 그 다음 목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처칠 경은 이 연설을 통해 전쟁 수행하는데 있어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결속시켰습니다.

대영제국과 영연방이 천년이 계속될 경우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가장 완벽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도록 임전 태세를 가다듬자고 처칠 경은 역설했습니다.

손자인 윈스턴 처칠 씨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새 박물관에 붙어있는 별관에서 살았습니다. 처칠 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격무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어렸을 적의 재미있는 추억 하나를 회상했습니다.

1944년 봄철 경에 세살 반쯤 됐을때 할아버지에게 작은 철도 시스템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 런던에는 문을 연 장난감 가게가 없었지만, 이 장난감을 꼭 갖고 싶은 욕망은 버릴 수가 없었다고 처칠 씨는 회상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젊은 해병이 누군가가 쓰다버린 중고품 열차 세트가 들어있는 다 찌그러진 마분지 상자를 2층 침실로 갖고 와서 할아버지를 크게 기쁘게 해드렸다고 처칠 씨는 말합니다.

그후 당장 할아버지와 자신은 카페트 위에 이를 내려놓고 열심히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이 열차 세트에는 태엽 감는 기관차가 하나가 아닌 두개가 들어있는 걸 할아버지가 발견하고는 하나를 자신에게 주면서 할아버지와 자신이 각 열차 세트의 태엽을 따로 따로 감은 뒤 충돌시켜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경은 그가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로 수행한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박물관은 또한 1895년 샌드허스트 사관학교 졸업 후 1965년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그가 공직생활 중에 남긴 수많은 다른 면모들과 그림 그밖의 편지들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람객들은 윈스턴 처칠 경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의 대결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항상 역사의 정당한 편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도와의 그 같은 위험은 대영 제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과 맞먹는 위기를 제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처칠경의 말입니다. 당시 영국산 면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보이콧은 처칠 경이 인도 독립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데서 비롯됐다고 해설자는 설명했습니다.

전시품들 가운데에는 처칠 경이 총리로 재직할 당시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입구에 실제로 붙어있던 출입문도 있습니다. 그 문 옆에는 “나는 운명을 안고 걸어가는 기분이다. 과거 나의 모든 삶은 단순히 이 시간과 이 시련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실패해서 안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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