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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의 나라 - 파란만장한 두 이야기 - 2004-09-18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이고 이민자들은 각기 미국에 정착하면서 경험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중 많은 것들은 큰 흥미를 끄는 내용들입니다. 이시간에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두 이민자들의 경험담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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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레이토씨는 제2차 세게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 나치가 점령중이던 헝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태인인 자신의 가족은 당시 외교관이던 스웨덴의 라울 왈렌버그 씨와 스위스의 칼 루츠씨의 도움으로 이른바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 남을수 있었습니다.

이 두명의 외교관들은 ‘ 죽음의 나치수용소 ’에서 수만명의 유태인들을 살리기위해 외교 문서를 발급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독일 나치는 무너지고 항가리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대신 들어서게 됐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레이토씨의 아버지는 공산주의 치하에 �q이면서 집과 사업체를 잃게 되고 또다시 박해를 받았습니다.

가족은 수용소에서 29개월을 보내고 그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1956년 소련에 항거했던 이른바 헝가리 민중 봉기를 겪었습니다. 1957년 레이토씨의 가족은 헝가리를 빠져나가 호주로 향했으며 그후 미국으로 이주해서 로스 안젤레스에 정착했 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레이토씨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공부하던 손자가 자기 학교 교실에 와서 경험담을 이야기 해달라고 해 그 학교를 찾게됐고 그후 그런 일은 반복됐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8학년 전체 학생들에게 경험담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후 며칠이 지나서 어린이들이 얼마나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특히 고맙다는 종이 쪽지 들을 받았을 때 말입니다. 그중의 한 소녀는 ‘레이토씨,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이야기들을 들을수 있도록 책을 쓰셔야겠다고 생각는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녀의 그런 언질과 그후 다시 찾게된 자신의 헝가리 방문은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금년 들어 레이토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자유의 추구’라는 뜻의 저서 ‘Pursuit of Freedom”을 출간했습니다.

올해 84세의 예르반트 마카리안씨의 경험담도 마찬가지로 행복으로 끝나는 이른바 해피 엔딩 이지만 매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카리안씨는 중국 동북부의 도시 하르빈에서 살던 아르메니아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20년 새로 탄생한 소련과의 국경 가까이에 위치한 중국도시 하르빈은 볼쉐비키 혁명주의자들을 피해 망명중이던 백계 러시아 이주민들과 터키의 박해를 피해 도피중이던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습니다.

젊은 청년이었던 마카리안씨는 나치 독일군에 대항하던 프랑스 군대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마카리안씨는 프랑스의 외국인 군단에 포함돼 공산주의 반도들과 싸우면서 결국은 당시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였던 현대의 베트남까지 흘러가게 됐습니다.

전쟁이 끝난뒤 마카리안씨는 프랑스의 조차지로 되어있던 중국 샹하이에서 경찰관으로 일했으며 뒤에 두개의 러시아 음식점을 경영하던 장인과 함께 일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여서 음식점들은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얼마 안가 1949년 중국에는 공산주의 자들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마카리안씨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새 정권은 좋지 못할 것이라던 것이 얼마 안가서 곧 명백해졌다고 많은 사례 를 들었습니다. 마카리안씨가 사업상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본주의자들로 낙인 찍힌뒤 자살했습니다. 마카리안씨 같은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근근히 연명해 나갔습니다.

1951년 마카리안씨는 5명의 가족을 거느리고 브라질에 정착했습니다. 폴투갈 말을 할수 없었던 마카리안씨는 새로운 역경에 처하게 됐으나 마침 포드 자동차 회사의 브라질 사무소에서 일자리를 찾을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마카 리안씨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포드 자동차 화사에서 일했습니다.

마카리안씨는 서부 헐리우드의 썬�V 블로바드에서 ‘카브카즈’ 로 불리는 중국 샹하이에서 운영했던 식의 음식점을 다시 차려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음식점을 차린지 얼마 안가 영화배우들과 영화 감독들이 즐겨 찾아와 음식점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카리안씨는 당시 유명한 배우와 감독들의 이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카리안씨도 자신의 인기 있는 식당 이름을 본딴 저서 ‘ 카브카즈’를 통해 자신의 이민 경험담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 두명의 이민자들은 초기에 닥친 역경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새 나라에서 찾게된 기회와 자유를 맘껏 누렸습니다. 레이토씨는 한 개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며 그 메시지를 이렇게 설명햇습니다.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주제는 영감을 주고 긍정적 사고를 갖게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꿈을 갖게 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린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최악의 시기에도 멋진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레이토씨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반드시 빛이 있음 을 지적했습니다. 레이토씨는 난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에 어떤 난관이라도 다루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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