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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세계시장 석권한 일본 호르라기 제조인 - 2004-07-31


다가오는 아테네 하계 올림픽은 많은 경기에서 일본의 독특한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제 호각을 자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일본제 호각이 최근 국제 경기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호각들은 [노다 소리 크레인회사]로 알려진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는 올해 73세의 노다 카주히로 씨가 만든 것입니다.

노다 씨는 저질의 호각은 안에 있는 코르크 공이 침에 묻으면서 금이 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다 씨는 완전히 매끄러운 표면이 되도록 코르크 공 위에 특수 방수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품 호각들은 구리나 니켈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크롬이나 금 도금을 하고 있습니다. 노다 씨는 훈련되지 않은 귀에 시범을 보여 주었는데, 우선 앞서 프랑스 국립경찰이 사용한 호각을 불어주고 다시 그가 만든 호각을 들려 주었습니다.

노다 씨는 적어도 1,500만개의 호각을 만든 후에야 겨우 그 호각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노다 씨는 유럽 경쟁사들이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비판합니다.

노다 가문은 지난 1919년에 북미에 값싼 하모니카를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그후 수십년에 걸쳐 소형 아코디언과 장난감 나팔과 같은 소형 취주악기를 만들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그와 그의 아버지가 일본군을 위해 모르스 코드 키의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자 그의 조그만 공장은 2개월 반 사이에 미군의 소이탄 폭격을 세번이나 받고 그때마다 재건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군들은 노다 씨의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미군들은 노다 씨의 아버지가 다시 하모니카를 생산하기를 원했지만, 원자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미군 병사들이 먹고 버린 빈 맥주 깡통의 주석을 이용해서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 말에 뉴욕의 한 상인은 영국의 파운드화가 상승하고 일본의 옌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을 보고 노다 가족들에게 영국 호각을 본떠 한번 만들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일제 제품은 값이 싸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음색도 좋았습니다.

일본의 축구 심판 오카다 마사요시 씨는 7년 전에 그가 처음으로 노다 씨의 호각소리를 듣고 당장에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카다 씨는 “처음에는 영국제 [애크미]를 사용했고, 두번째는 이탈리아제 [발릴라]를, 세번째는 캐나다제 [폭스 40]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다 씨의 호각을 사용했는데, 자기는 노다씨의 호각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카다 씨는 노다 씨의 코르크 공은 경기 관계자들과 선수들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제경기에서 중요한 특징인 소리를 심판들이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 때 오카다 씨는 큰 스타디움에서 관중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커다란 마우스 피스가 달린 노다 씨의 새로운 호각을 심판들에게 지급했습니다.

“나는 67명의 심판들에게 기념품으로 호각을 주었는데 그들은 은과 금으로 만든 예쁜 호각을 받아들고 놀라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오카다 씨는 이번 아테네 하계올림픽 때 일부 관계자들이 노다 씨의 호각을 불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다 씨의 호각은 지난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과 200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그리고 4년 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서 사용됐습니다.

다른 호각들이 10달러 정도인 것에 비하면 30달러 내지 80달러로 상당히 비쌉니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경찰과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50여개국의 애호가들에게 이 호각의 가격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노다 호각의 미래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노다 씨는 값싼 타이완제의 맹렬한 경쟁에 탄식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오히려 국내에 있습니다. 노다 씨의 세 아들은 아무도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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