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불우한 삶, 음악으로 승화시킨 재즈 블루스 음악의 거장  레이 찰스  타계  - 2004-06-11


가수이자 작사자이며 작곡자에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뛰어난 재능의 음악가 레이 찰스가 6월 10일 향년 73세로 캘리포니아 비버리 힐스 자택에서 급성 간암으로 타계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수많은 음악팬의 사랑을 받던 챨스 레이의 생애와 음악 세계를 간단히 살펴봅니다.

레이 찰스에게 있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유산인 가스펠과 리듬과 불루스는 항상 주된 테마가 됐습니다. 그의 50여년간의 활동기간을 통해 맹인 가수였던 레이 찰스는 미국과 해외에서 12개의 그래미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GEORGIA ON MY MIND”는 아마도 레이 찰스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노래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는 직접 이 곡의 작사자는 아니지만 작곡을 해 아주 유명해졌기 때문에 찰스가 태어난 남부의 조지아주는 이것을 주가로 정했습니다.

레이 찰스는 1930년 조지아 주 앨버니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레이 찰스 로빈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찰스는 다섯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이를 마스터했습니다. 그는 일곱살 때 녹내장으로 실명했습니다. 그는 맹아학교에 다니면서 작곡을 공부하며 브레일 점자로 악보를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열다섯살에 고아가 되자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악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후 악단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활동 초기에 레이 찰스는 냇 킹 콜을 포함한 몇몇 불루스 가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습니다. 그는 1955년에 “I GOT A WOMAN”을 발표하면서 음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하게 됐습니다.

레이 찰스는 일부 가수들로부터 가스펠 음악에 불루스의 특징인 성적 암시를 도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말로 불루스와 재즈, 가스펠, 컨트리 송과 로큰롤의 여러가지 스타일을 종합한 것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특징입니다.

레이 찰스는 항상 끼고 있던 검은 안경을 제외하고는 장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외부적인 표식도 피했습니다. 그는 결코 맹인견이나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조수가 따라다녔습니다. 레이 찰스는 그의 17인조 밴드와 함께 한주일에 엿새나 일곱 밤을 일하면서 매년 8개월동안 여행했습니다. 찰스는 모든 노래를 직접 편곡했습니다. 그는 보통 공연이 시작되기 5분 전에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을 직접 선정했습니다. 그는 이런 방법을 좋아했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계속 떠돌아다니다 보니 세번이나 결혼생활에 실패했고, 17년간 마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1965년에 그는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해 마약 중독을 완전히 치료했습니다. 그후에 그는 미국에서 콘서트에서부터 조그만 저녁 클럽에서까지 연주를 하면서 작품활동에 그의 온 정열을 기울였습니다.

“아메리카”는 “우리 미국인들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우리는 의지와 정력만 있으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의 팬들에게 있어서 레이 찰스는 “레이 형제”라는 애칭으로 더 잘 불렸는데 이 이름은 1978년에 출판된 그의 자서전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는 1986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초기의 가수중 한사람이 됐습니다. 그가 대중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지난 4월 30일 로스 앤젤레스시가 그의 40년 된 스튜디오를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할 때였습니다. 레이 찰스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오랫동안 백업 가수 그룹인 [레일리츠]를 묘사한 그의 최고의 히트곡 “HIT THE ROAD JACK”이었습니다.

찰스는 작년 12월에 둔부 이식수술을 받고 그의 2004년 여행 스케줄을 전면 취소했습니다. 그는 6월 10일에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에서 급성간암으로 향년 73세로 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