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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통사람들의 보통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 2004-06-08


미국인들은 지난5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고별인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레이건 지지자들과 비판가 들은 고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을 놓고 의견을 달리할수도 있지만, 단 한가지 고 레이건 대통령은 20세기 후반 미국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중 하나 였다는 사실에만은 견해를 같이합니다. 고 레이건 대통령의 생전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배경 보돕니다.

미국인들이 제 40대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있는 가운데 레이건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정치적 자산이라면, 항상 미국의 보통사람들과 공감대를 함께 할수 있었던 능력이 꼽히고 있습니다.

보통 미국인들 가운데 한 여성은 개인적으로 레이건 대통령을 좋아했으며 미국인들을 위해 행한 모든 일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또다른 한 남성은 고 레이건대통령은 자신을 철의 장막에서 빠져나와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이건대통령이 상대방에게 주는 호감과 매력은 스스로에게도 큰 자산이었습니다. 1981년 암살기도 사건의 여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레이건 전대통령은 재미난 농담들을 통해 나라를 안정된 분위기로 이끌어 갔습니다. 지난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건이 있은 뒤에도 대 국민 연설로 레이건 대통령 만큼 전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줄수 있었던 지도자는 달리 없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은 좌절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용감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챌린저호 승무원들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 왔으며 우리는 그들을 뒤따라 갈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아침 우주여행에 나설 준비를 갖추며 작별인사의 손을 흔들고 하느님의 나라로 가기위해 험악한 지구의 속박을 벗어나던 마지막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장래에 대한 로널드 레건 대통령의 낙관적인 감각은 마치 전염성을 지닌듯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습니다. 고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데이빗 거겐씨는 1980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시의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거둔 레이건의 승리는 미국을 새로운 진로로 이끌어 준듯 느끼게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거겐 씨는 1970년대말 당시 미국의 분위기는, 여론조사전문가인 팻 카델씨가 카터 대통령에게 말했듯이 어제는 오늘 보다 나았고 오늘은 내일 보다 나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그 당시 미국인들은 미국이 하향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암울한 기분이었으나 그런 상황에서 레이건후보는, 앞으로 미국 최고의 날들이 전개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낙천적인 연설로 미국인들에게 다시금 미국은 보다나은 내일을 개척할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게 되었다고 거겐씨는 회고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 부통령을 지낸 죠지 부쉬 전대통령은 엔비시 텔레비 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로널드 레건 대통령의 승리는 평범한 화술과 굽힐줄 몰랐던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고수한 데서 가능했다고 말햇습니다.

고 레이건 대통령은 세율은 너무 높으며 공산 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등 원칙들을 신봉했었다 면서 주로 근본적인 원칙에 속하는 내용의 것들이었다고 부쉬 전대통령은 말했습니다 부쉬 전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여러가지 일로 다소 타협이 필요할 때는 그런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화제로 되돌아가곤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의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한 고 레이건 대통령의 표현은 일부 소련 외교관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지도층에 대한 정면 도전은 전 자유세계에 있어서는 대단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한 자리에서 행한 연설중의 한마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 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소련지도자, 고르바쵸프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요구했습니다. 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거둔 최고의 승리는 지난 1984년 전국 50개주 가운데 49개주를 휩쓸며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후보를 압도적인 표수차로 물리쳐 재선에 성공했을 때였습니다. 미국인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의 소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당시 레이건후보는 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에는 다시 아침이 찾아왔으며, 레이건 대통령의 지도하에 미국은 더욱 자랑스럽고, 더욱 강력하고, 또한 더욱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재임중,1984년이 절정기였다면 반면에 가장 어두웠던 몇년후, [이란 콘트라추문]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한 의회 조사가 시작되면서 부터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레바논에 억류돼 있던 인질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을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들을 위해 전용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 이란 무기판매 수익금이 전용되었는지, 또 그런 자금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비판가들은 에 [이란-콘트라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이 일상적인 직무 수행에 지나치게 소홀했고 측근들을 통솔할 용의가 없었던가 아니면 그럴 만한 능력을 결여했음을 입증한다고 비난했었습니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의 자서전 집필자인 에드먼드 모리스씨는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유업은 국가 장래에 대한 믿음과 또 낙천적인 성품에 의해 평가될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리스씨는 레이건대통령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점잖았고 이는 인격적인 매력을 더하게 된 소양이었다고 모리스씨는 풀이합니다. 정치적으로 난관에 처했을때에도 레건대통령은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자비심에 넘치고 또 미국을 위해 최선을 추구한다는 점을 일반은 알고 있었다고 모리스씨는 말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수만명의 조문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국장을 마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캘리포니아의 레이건 기념도서관에 영구안장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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