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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미 원로 코메디언, 밥 호프 별세 (영문서비스) - 2003-07-28


전 세계 연예계에서 진정한 수퍼스타로 군림했던 밥 호프씨가 100세의 고령으로 지난 27일 별세했습니다.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던 미국 코메디언 밥 호프씨는 지난 5월 29일 100세 생일을 맞은지 2개월 만인 27일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평생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한 밥 호프씨의 생애를 회고하는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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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제작된 영화 “the big broadcast of 1938”에서 밥 호프씨와 셜리 로스씨가 부른 “thanks for the memory”라는 노래는 밥 호프씨가 전 세계 텔레비전이나 공연무대, 혹은 라디오 방송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연주되던 주제 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밥 호프씨는 무엇보다도 속사포같은 말씨와 해박한 재담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밥 호프씨는 1903년 5월 29일 영국 엘담의 레슬리 타운 호프에서 태어난 후, 4살 되던 해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습니다. 밥 호프씨는 코메디언이 되고 싶어 했고, 젊었을 때 유랑극단의 코메디언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고 그후 브로드 웨이 무대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계로 진출했습니다. 미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던 1941년, 밥 호프씨는 군에 자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에 복무하는 것보다 연예인으로써 군인들의 사기를 진착시켜주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그후 60년동안 그리고 5차례 전쟁을 거치는 밥 호프씨의 오랜 연예계 전통의 시작이었습니다.

“후원자가 와서 전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성공적인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원자는 제가 가고싶은 곳 어느곳이건 돈을 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5년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우리는 라디오 쇼를 하면서 매주 다른 군 기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나선 해외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신명나게 그 모든 공연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을때 한국에 파병된 미군들을 위한 위문 공연 차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밥 호프씨는 한국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웃으면 얼어붙은 수염이 깨져 나갈 것이라고 익살을 부리고 한국 여성들이 머리로 짐을 이고 다니는 것을 화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밥 호프씨 같은 큰 인기와 부 그리고 명성을 얻은 쇼 비즈니스 인사들은 역사상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밥 호프씨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에서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친구였는가 하면, 여러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모든 미국 군 부대로부터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또한 밥 호프씨는 4번에 걸쳐 아카데미 명예상을 받았으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명예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미 국회가 1997년 호프씨에게 “명예 퇴역 군인”이라는 직위를 주었을 때, 호프씨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남녀 군인들 가운데 한명이 되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어떤 영예보다 더욱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밥 호프씨에 대한 가장 최근 이뤄진 감사의 표시가 현재 국회 도서관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국회 도서관은 2000년 5월 9일, 호프씨의 8만8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농담들이 기록된 전설적인‘재담 서류”등이 포함된 “미국 연예계의 밥 호프 전시관”을 개관했습니다. 밥 호프씨와 함께 66년을 동거동락해온 아내 돌로레스 호프씨는 전시관 개관식에 밥 호프씨와 동행했습니다. 돌로레스 호프씨는 남편이 20세기의 스타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더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부쉬 미국 대통령은 28일 성명을 통해 밥 호프씨는 수 천명의 병장들과 여러 세대를 위해 웃음을 선사해 준 위대한 미국 시민이었다며 10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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