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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체결 50주년 특집] 한국전 이야기 - 2003-07-25


오는 27일은 한국전쟁의 정전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휴전 후 공식적인 평화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최근의 북한과의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소리 스테파니 호 기자의 보돕니다.

50여년전, 소위 세계의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비밀리에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반도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군은 유엔군을 지휘했는데, 이 유엔군은 21개국의 군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상대편은 북한군과 중국군이었습니다.

퇴역 해군 소장인 제리 쿤 씨는 1952년 그가 한국 전선에 도착했을 때 초기의 치열한 전투는 위험하고 지루한 참호전으로 바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적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전선을 고착시키면서, 우리는 전선에서 우리가 아직 살아서 활동할 수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그 생명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쿤 제독은 당시 미 해병대에서 군목으로 복무한 초급장교였습니다.

우리는 움푹 패인 박격포 웅덩이를 이용하였는데 그곳은 북한군과 중국군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거기에 마치 교회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병사들의 참호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얘기를 나누고, 병사들을 집결시킵니다. 아마도 그들은 순회 목사처럼, 찬송가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얘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많이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대는 모두 보병부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참호 안에 갖혀 사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3년간의 전쟁은 양측이 휴전에 동의함으로써 막다른 고비로 내달렸습니다. 휴전협정의 결과로 남북한은2백43킬로미터에 걸쳐 폭 3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전선에서 포성이 멎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엄청났습니다. 중국군은 이 전쟁으로 약 백만명을, 그리고 북한군은 60만명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유엔군의 전사자는 약 3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3분의 2는 한국군입니다. 이 전쟁에서 미군은 3만 7천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미국의 평화연구소의 윌리엄 드레넌씨는, 1953년 7월 27일의 휴전으로 포성은 멎었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피비린내나는 3년 1개월간의 한국 전쟁은 단지 연기되었을 뿐입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평화도 없습니다. 다만 전쟁이 중단된 상태일 뿐입니다.

드레넌 씨는 결국 평화협정의 체결로 전쟁이 종식되면 한반도에 안보가 강화됨으로써 핵무기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면,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억지력으로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하는 북한의 주장을 무색케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후 평화 정착을 위한 몇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시 정전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한 국제협정을 위반하고 핵무기를 생산하려는 계획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최근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서는 전통적인 국립묘지 헌화를 비롯하여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기념하는 우표 발행, 아메리칸 텔레비전의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계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대사관과 한국전에 참전했던 노르웨이 참전용사들의 활약상을 보여 줄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우리는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이라고 부르는 천막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 기념위원회의 사무국장인 제이 노버트 라이너 씨는 한국전의 계속적인 해결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계속 물어대는 모기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모기를 쳐서 쫓아도 그것은 계속 물어댈 것입니다.

라이너 씨는 최소한 한국전에 관한 한, 새로운 세대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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