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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체결 50주년 특집] 북한의 도발 50년사 - 2003-07-25


남북한 간의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은 아직도 공식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정전 협정으로 전투가 중단됐을 뿐입니다. 미국과 남한은 지난 50년에 걸친 북한 정부의 오랜 도발행위때문에 오히려 이전의 적대행위가 재발될 위험이 증대됐다고 말합니다.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에 즈음해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보도를 전해드립니다.

백만명 이상의 군인들을 사망 또는 실종케 하고 일부 추정에 따르면 3백만명의 민간인 사상자들은 낸 3년여 에 걸친 남북한사이의 전투는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로 중단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사측은 남북한사이에 무인지대인 비무장 지대를 설정했습니다. 남북한은 지난 50년간 여러 차례 간헐적인 충돌을 빚었고 전투 재개 직전까지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북한 지도자들은 남한과 특히 미국을 포함한 남한의 동맹국들이 공산북한의 존속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같은 확신을 토대로, 북한은 남한 정부를 불안에 빠뜨리고 휴전선 이남 전선에 3만7천명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 정부를 도발하려 했습니다.

북한은 1968년과 그 6년 뒤, 두번이나, 박정희 전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를 모면했으나, 두번째 암살 시도에서 부인, 육영수여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983년에, 두명의 북한군 장교가 버마 아웅산에서 남한의 외교행사장에 폭탄을 장치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우드로우 윌슨 국제 센터 워싱톤 지부의 아시아 활동계획 책임자 로버트 하싸웨이씨는 외무장관을 포함한 17명의 남한 관리들이 이 폭발로 사망했다고 회상합니다.

“당시 남한의 전두환 대통령은 정시에 도착했더라면, 역시 살해됐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공작음모는 그밖에도 여러 차례 더 있었다고 하싸웨이씨는 지적합니다.

1987년 대한 항공 707 여객기가 공중 폭발해서 95명의 승객과 20명의 승무원들이 사망했습니다. 생포된 북한 여성 요원, 김현희는, 자신과 동료 요원 한명이 그 이듬해인,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외국 팬들을 겁주기 위해 비행기안에 폭탄을 장치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북한은 탄도 미사일을 일본, 중부상공을 넘어 발사함으로써 , 동북 아시아 국가 정부들과 미국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북한 정부는 여러가지 공작음모계획을 위해 납치도 일삼았습니다. 2002년 9월, 북한 정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간첩 교육용으로 일본인 13명을 납치했음을 시인함으로써 전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남한 당국은 북한에서 굴착된 네개의 땅굴을 발견했는데, 이는 수백명의 병력을 남한으로 침투시킬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남한 정부는 또한 북한이 남한 영해에서 여러번의 해전을 도발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북한 정부는 정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 정부는 경계선을 넘어 남파되는 간첩들을 검거하고 있고, 이들은 때로는 짐수함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마이클 브린씨는 서울에 거주하는 전 기자출신 사업가로, 최근에 “한국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의 장래는 어떠한가”라는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브린씨는 도발행위의 대다수는 북한이 저지른 것이기는 하지만, 일방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은 남한에서의 계속적인 미군 주둔은 도발적인 군사 배치라고 간주합니다. 그런 주장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한 대통령 들을 겨냥한 암살 기도도 실제로는 남한측 도발행위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 이것은 북한의 잘못을 눈감아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백건의 사건이 있다면, 그 중 99건은 북한의 도발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년간,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사이의 긴장은 주로 북한의 핵 야욕을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북한 지도자들은 남한과 미국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은 핵무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금년초에도 북한은 국제 핵확산 금지 조약으로부터 탈퇴를 선언 하고, 북한의 핵무기 제조활동을 현장 검증하는 국제 핵사찰 요원들을 추방했습니다.

1993년 말에 이르러, 북한의 핵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1994년 중반 북한 방문은 당시 교착상태 해소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중유원조및 연료생산을 위한 경수로 건설지원등과의 교환조건에 합의해, 핵 개발계획을 동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달동안, 북한은 국제 핵무기 확산금지노약을 파기하고 다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북한은 핵 계획을 포기하라는 미국과 남한, 일본, 그리고 중국의 압력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먼저 미국과의 불가침 협정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을 공격할 계획이 전혀 없으며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거듭 천명하고 있으나, 정식 불가침 협정과 북한의 이웃나라들의 참여 없는 북미 양국간의 직접 양자대화 요구는 거부합니다.

남북한사이의 전선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급박한 전쟁 발발 위험 지역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느 순간에라도 대규모 전쟁이 촉발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핵전쟁까지도 발발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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