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풍부한 다양성과 재능 겸비한 명배우 - 은막의 위대한 영웅 그레고리 펙 - 2003-06-16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와 연극, 텔레비전 드라마 등장인물들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미국의 명배우 그레고리 팩이 87세를 일기로 로스 엔젤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시간에는 인기 배우 그레고리 펙의 일생을 돌아봅니다.

************

미국 할리우드의 한 언론인은 그레그리 펙의 스타일을 가르켜 ‘미국에서 떠오르는 중세 고딕양식의 건축물’과 같다고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수려한, 그러면서도 겸손하며, 말투가 부드러운 그레고리 펙은 은막의 영웅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라 홀라에서 1916년에 태어난 그레고리 팩이 전문직으로써 연기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보트경기 선수였던 그레고리 펙은 등에 부상을 입은후 더 이상 운동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교 연극에서 제 한 배역을 맡기로 수락했던 것은 바로 그때문에, 순전히 그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요청했을때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재미로 한번 해보았을 뿐입니다. 저의 연기는 좋치않았습니다. 그렇치만 뭔가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었던 문학, 드라마, 저술, 자기표현 등과 연관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1942년에는 이미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으며 그러부터 2년후에는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그의 초창기 영화가운데 하나인 1944년의 ‘ The Keys of the Kingdom’ [왕국의 열쇠]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그후 40여년 동안 꾸준히 성장한 스타덤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중에 할리우드 아카데미상 후보로 5번이나 지명됐으며 1962년에는오스카 최고 남자 배우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한국에서 [앨라바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To Kill a Mockingbird’ 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남부 소도시의 한 변호사역을 맡아 예민하면서도 강력한 연기력을 구사함으로써 받았습니다.

“저는 그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처음 그에 관한 책을 읽었을때 제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느꼈습니다. 저에게 아주 안성맞춤의 역이었습니다. 그 작은 소도시의 변호사 역은 제가 아주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역이었습니다. 아주 몸에 밴 편한 양복을 입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영화는 아직도 저에게 아주 소중합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변호사가 부당하게 강간혐의를 받고 있는 한 무고한 흑인 남자를 변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흑인 남자의 누명이 나중에 벗겨지기는 했지만 이 변호사는 그렇게함으로써 그 소도시에서 자신의 평판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의 신변안전에도 위험이 따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고한 흑인 남자를 변호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영화의 줄거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자신의 연기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그는 역할을 잘못 맡았다거나 각본 내용이 좋치 않았다거나 할경우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와 함께 침체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리 펙의 좋은 영화들은 그렇치 못한 영화들로 인한 타격을 상쇄하는데 충분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들 가운데 스스로가 선호하는 영화로 [신사 협정], [로마의 휴일], [나바론 요새], [앨라바마 이야기] 등을 뽑았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배우로서의 경력중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분야는 코메디, 유머 등의 가벼운 분야였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배우로서의 경력이 끝나갈 무렵 자신이 기회를 상실했던 점을 애석해 했습니다.

“ 어느 면에서는 저의 배우로서의 경력 내내 덜 진지하고, 덜 심각한 이메지, 약간의 코메디, 좀더 가벼운 역할을 맡아 훌륭히 소화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웃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연기와 연예의 최고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가 웃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웃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바로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레고리 펙은 후반기에 자신의 전문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1972년에 그는 영화 ‘The Trial of the Catonsville Nine’ 의 제작자가 됐으며, 그로부터 5년후에는 영화 [맥아더 장군] 에서 미군 사상 탁월한 인물로 손꼽히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연기해냈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 The Boys from Brazil’ 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악한의 역할을 맏았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연기세계를 떠나면서 풍부한 다양성과 독특한 재능 두가지를 모두 겸비한 명배우로서의 전설을 남겼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