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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링클리가 남긴 유산 - 방송 뉴스의 선구자 - 2003-06-14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사람으로 평가받던 데이비드 브링클리(David Brinkley)씨가 지난 12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링클리씨의 이름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뉴스와 함께 많은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의 50년 동안의 언론계 경력은 미국의 주요 언론사와 나란히 성장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부터 빌 클린턴에 이르는 11명의 미국 대통령들을 취재했습니다.

브링클리씨는 처음 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들어 2차대전 당시 NBC의 라디오 방송일을 하다가 텔레비전 초창기 TV 뉴스에 몸담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브링클리씨와 쳇 헌틀리(Chet Huntley) 기자와 짝이 되어 민주당 및 공화당의 대통령 지명 전당대회를 취재함으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헌틀리-브링클리 리포트 [The Huntley-Brinkley Report]’를 진행하며 그들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세를 보였고 방송에서는 이들을 텔레비전 뉴스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이인조 심야 뉴스앵커’라 불리웠습니다.

1981년에 브링클리씨는 NBC를 떠나 경쟁사인 ABC로 자리를 옮겨 매주 일요일 마다 ‘데이비드 브링클리와 함께 [This Week with David Brinkley]’ 라는 정치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1996년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논평을 통해 언론계에 이바지 했습니다.

사실 데이비드 브링클리씨가 유명해진 것은 헌틀리씨와의 매 방송마다 했던 마무리 인사 때문이지만 이것은 제작자가 의도한 일뿐 실제로 자신은 마무리 인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 인터뷰를 통해 브링클리씨는 밝혔습니다.

"무리 인사는 순전히 제작자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헌틀리씨도 두명의 남자가 서로에게 이름을 부르며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하는 말은 여자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말투처럼 유약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별로 그 마무리 대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두 방송인의 명성은 영화배우 죤 웨인이나 비틀즈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브링클리씨는 사람들로 부터 뉴스 초창기의 선구자이며 베테랑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브링클리씨는 무려 10회의 에미 상을 포함해 많은 방송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1992년에는 미국에서 시민이 받을수 있는 가장 높은 영예의 상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도 받았습니다.

브링클리씨는 텍사스 휴스톤에 있는 자택에서 합병증으로 타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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