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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백년사 (8) 사탕수수밭의 코리언 4편-하와이 이민사회의 어머니, 사진신부들 - 2003-02-15


사진 한장만을 교환한 채 결혼을 결심하고 하와이로 시집온 사진 신부들은 1913년 호놀루루 한인 감리 교회 안에 '한인 부인회'를 조직해 동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인 사회 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일본 상품 불매 운동등을 전개함으로써 민족 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진 결혼 당시 신랑과 신부의 나이 차이는 평균 15세.

많게는 신랑과 신부가 20-30년씩 차이나는 쌍도 흔했습니다. 또 신랑들이 학벌이 거의 없는 이가 많았던 반면, 고국에서 건너온 사진 신부들은 소학교 이상 여학교를 마친 이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현격한 나이 차와 서로 다른 교육 수준 그리고 성장 환경등 모든 조건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진 신부들은 새로운 땅에서의 새출발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이 땅 미국이 내가 영원히 살아갈 땅이라는 일념으로 사진신부들은 결혼식을 마치자 마자 농장으로 나가 일을 시작한 억척들이였습니다. 남다른 의지를 가진 사진 신부들은 역경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녀 교육에도 열성적이였던 덕분에 하와이 이민자들의 후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며 한인 이민사회는 점차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어 갔습니다.

사진 한장으로 백년 가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온 꽃다운 처녀들.

그들은 하와이 농장 이민 노동자들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으며 하와이 초기 이민 사회의 굳건한 뿌리 내림을 이룬 자랑스런 어머니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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