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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백년사 (3)-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의 시작 - 2003-02-01


조선 정부는 1902년 공식 하와이 이민이 허락하고 미국인 데슐러를 하와이 이민 책임자로 정했습니다. 데슐러는 동서 개발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하와이 이민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데슐러가 하와이 이민자를 모집하기 위해 전국에 붙인 방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평등의 나라 미국 하와이 날씨는 누구에게나 적합하고 더위나 추위도 없다.모든섬엔 학교가 있어서 영어를 배울수 있으며 수업료는 무료다. 건강하고 행실이 바른 사람은 누구나 연중 풍부한 농사 일감이 있다. 월급은 미국돈 15달러, 조선돈으로 67원이다. 일요일에는 쉬며 하루 10시간 일한다. 주택비 연료비 수도세 병원비는 고용주가 지불한다."

이렇게 모집된 하와이 이민 희망자들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 항을 출발해 드디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1905년 11월 돌연 모든 국가에 대한 이민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에 대한 배경으로는 조선 주재 일본 공사의 압력과 충고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당시 멕시코로 이민을 갔던 조선인들이 노예와 다름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선 정부는 멕시코 이민을 금지시켰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공사는 이러한 조치는 불공평한 것이라며 비난을 면하려면 멕시코를 포함한 모들 나라에 대한 이민을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런 충고의 이면에는 자국의 하와이 노동 이민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었습니다.하와이 농장주들이 먼저 하와이 이민을 시작한 일본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인 노동이민 유입을 추진했었고, 일본 이민자들이 하와이에서 견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공사는 조선 정부에 이민 금지 정책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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