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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 농구 [NBA]'90년대 최고 센터 하킴 올라주원 은퇴 - 2002-11-12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샤킬 오닐과 패트릭 유잉 등을 제치고 1990년대 최고의 센터로 꼽히고 있는 토론토 랩토스의 하킴 올라주원이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정들었던 농구 코트를 떠났습니다.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 있는 휴스톤 로킷츠 팀은 지난 9일 골든 스테이츠 워리어스와의 홈 경기 전반전이 끝나고 난 후 올라주원의 은퇴식을 거행했습니다.

지난 시즌부터 캐나다의 토론토 랩토스 선수로 뛰었던 올라주원의 은퇴식이 토론토가 아닌 휴스톤에서 열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 프로농구/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에 포함된 나이지리아 태생의 농구 스타 하킴 올라주원은 휴스톤에서만 20년 이상 활약했기 때문입니다.

올라주원이 나이지리아를 떠나 휴스톤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휴스턴 대학 농구팀에 합류하면서부터 였습니다. 휴스톤 대학 재학 당시 올라주원은 소속 팀을 3년 연속 미국 대학 농구선수권 대회 4강으로 이끌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올라주원은 지난 198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돼 휴스톤 로킷츠에 입단했습니다. 17년동안 로킷츠에서 활약하면서 팀을 1994년과 95년, 2년 연속 NBA 정상에 올렸 놨습니다.

휴스톤은 언제나 올라주원의 마음속에 고향같은 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올라주원도 은퇴식이 거행되는 동안 휴스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올라주원은 대학시절부터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변함없이 자신을 지켜보며 성원해 준 모든 팬들과 휴스톤 시에 진정으로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NBA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90년대 최고의 센터는 누구인가?’라는 여론조사에서 45퍼센트의 지지를 받으며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는 전설적인 명센터인 올라주원도 지난 몇 년동안은 부상과 각종 질병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천식과 비슷한 호흡 곤란, 다리에 생긴 혈전, 탈장 수술에다가 마침내 등의 부상 으로 마침내 은퇴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올라주원은 지난 시즌에 휴스톤을 떠나 캐나다에 있는 토론토 랩토스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게임당 평균 7득점과 6리바운드에 그쳤습니다. 통산 평균 22득점과 11리바운드에 훨씬 못미치는 저조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라주원은 지난 17년동안 프로 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가운데 한 명으로 확실히 자리 매김했습니다.

그동안 1238경기에 출장해 총 26,511 득점과 13,382개의 리바운드를 올리면서, 통산 평균 득점 21.8점과 11.1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올라주원은 14번의 트리플 더불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올라주원은 로킷츠가 첫번째 NBA 패권을 차지했던 지난 1994년에, NBA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최우수 선수와 시즌 최우수 수비선수, NBA 결승전 최우수 선수를 한 시즌에 차지한 첫번째 선수로 기록됐습니다.

그밖에도 올라주원은 NBA 역사상 처음으로 득점과 리바운드, 가로채기와 블락 슛에서 모두 상위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블락슛은 3830개로 아직도 NBA에서 올라주원의 기록을 능가하는 선수가 없습니다.

나이지리아에 사는 VOA 청취자 주베 에로부 씨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웃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의 올라주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농구 선수가 된 올라주원은 당시 나이지리아에서는 소년 시절에 축구를 했다고 에로부 씨는 말했습니다. 축구를 통해 빼어난 발놀림을 익힐 수 있었던 올라주원은 다양한 공격 형태와 슛으로 팬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휴스톤 크로니클 신문의 농구 담당 기자인 조나단 페이건 씨는 올라주원이 프로 선수로 경기를 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은 1980년대 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댈러스 매버릭스의 로이 타플레이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벌였었는데, 올라주원의 운동 선수로서의 능력에 깜짝 놀랐다고 페이건 씨는 회상하면서, 그러나 휴스톤 대학에서 농구를 하던 올라주원을 본 것도 생각이 난다면서, 당시 올라주원을 보고 정말 드문 운동선수라고 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올라주원은 지난 1993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지난 1996년에는 미국 국가대포팀의 일원으로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조나단 페이건 기자는 올라주원은 독실한 회교 신자로 휴스톤 지역에 있는 일부 회교 사원들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페이건 씨는 올라주원은 이제 더 이상 농구를 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벌이고 있는 사업으로 계속 바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휴스톤 로킷츠 팀은 12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됐던 올라주원의 은퇴식이 열리는 동안 그의 등 번호였던 34번을 영구 결번으로 처리하고, 올라주원이 입었던 농구복 상의를 경기장에 걸어 놓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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