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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중국 지도자로 부상하는 후 진타오-진면모 파악에는 여러해 걸릴수도 - 2002-11-07


중국은 8일에 개막된 공산당의 전당대회 격인 제16차 전국 대표대회 기간 중에 장쩌민 국가주석의 뒤를 이를 새 지도자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부주석으로 있는 ‘후 진타오’가 이달 중에 이 당 대회가 끝나면서 새로운 당 총서기에 임명되고 내년 3월에는 그가 국가 주석직까지 맡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인구를 지닌 중국을 통치할 것으로 전해진 후 진타오에 대해 그리고 그가 얼마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매우 적습니다. 중국에서 ‘후 진타오’ 부주석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향후 전망을 전문가들의 견해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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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지도부 교체가 있을 때마다 늘 혼탁한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마오 저뚱’주석이 당초 선정했던 두명의 승계자는 당에 불충실하다는 이유로 해임된 뒤 불명예 속에 사망했고 그후 최고의 실력자로 있던 ‘덩 샤오핑’에 의해 선정된 다른 두명은 너무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또한 거부됐습 니다. 따라서 후 진타오 부주석이 중국의 새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일반적 인 예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쩌민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확신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후 진타오가 장쩌민 당총서기 직을 승계할 것이라고 한번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장쩌민 주석은 자신이 실제로 은퇴할 것임을 확인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관측통들은 모든 신호들이 후 진타오를 가리키고 있음 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시드니’대학교의 프레드 테이웨스 교수는 후 진타오의 상층 지도부로의 부상은 중국의 전 지도자 덩 샤오핑에 의해 이미 시작됐으며 10년전에 열린 제14차 당 대회에서 덩샤오핑은 자신의 직속 부하인 후진타오가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습니다.

“후 진타오에 대해서는 우리가 1992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 해에 그는 49세의 나이에 정치국 상무 위원직에 올랐 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적게 보더라도 덩 샤오핑이 승인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전체적인 증거로 볼때 그 조치는 실로 의심할 여지 없는 덩 샤오핑의 승인이었던 것으로 시사되고 있습니다.”

덩 샤오핑에 의해 당의 상층부로 부상한뒤 10년이 지나서 이제 59세의 나이가 된 후 진타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중국인들과 서방 세계인들에게 다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존재해 왔습니다.

1942년에 태어난 후 진타오는 베이징에 소재한 ‘칭후아’대학교에서 수력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후 진타오는 중국 내륙에 위치한 가난한 지역인 ‘간수’ 성과 ‘귀조우’ 성에서 일하면서 공산당의 일자리를 얻게 됐습니다. 이 기간중에 간수성의 당서기장을 맡았던 ‘송핑’은 후 진타오의 훌륭한 조언자가 됐습니다.

대체로 송핑과의 좋은 관계에 힘입어 후 진타오는 1982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최연소 중앙위원이 되면서 상당히 빨리 승진했습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귀조우성의 당서기장에 임명됐고 1988년부터 1992년까지는 티벳트의 당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중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직책들을 맡기도 했습니다.

후 진타오는 티베트에 있는 동안 곳곳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의시위를 진압하기 위해1989년에 3월에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티베트의 운동가들은 후 진타오가 강경 보수파 인물이라는 증거로 당시에 티베트에서의 그의 정치적 행적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옵서버들은 후 진타오가 당시에 고산지 병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티벳트에서 떠나 있었으므로 단순히 베이징 중앙 당국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93년에 후 진타오는 정부 관리들이 교육을 받는 중앙당 학교의 책임자가 됐습니다.그는 정치개혁과 서양식 경영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도입하는 등 편협한 교과과정을 개편했습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앙당 학교에서 후 진타오가 이룩한 업적들은 그가 온건한 진보주의자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금까지의 경력을 통해 볼때, 후 진타오는 자신과 접촉햇던 사람들에게 별로 인상적인 점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전의 공산당 관계관이었던 홍콩의 ‘차이니스 유니버시티’에서 교수로 있는 우 씨는 우선 자신이 후 진타오씨를 여러 번 만나 봤으나 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히고 그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지위를 잘 지탱할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몸을 낮추고 어떤 큰 실수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 교수는 후 진타오가 지도자가 되면 경제개혁과 세계 경제로의 통합을 계속 지지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 교수는 문화 혁명의 격변기에 성인이 된 이른바 ‘제 4 세대’의 중국 지도자에 속하는 인물로서 후 진타오는 중국 개혁정책의 수혜자로서 그러한 개혁정책을 되돌려 놓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예상대로 후 진타오가 차기 공산당 총서기가 된다 하더라도 장쩌민이 통치의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까지는 얼마동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아직 시험을 받아보지 않은 지도자로서의 후 진타오는 다른 고위 지도자들의 신임과 신뢰를 획득하고 앞으로도 계속될 실력자인 장쩌민의 영향력을 물리처야 할 입장에 놓일 것입니다.

워싱턴에 있는 ‘랜드 코포레이션’의 중국 문제 분석가로 있는 이반 메데이로스’씨는 몇가지 점에서 후 진타오의 입장은 지난 1989년 비교적 낮은 신분에서 통치권을 인수한 현 지도자 장쩌민의 경우와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쨋든 후 진타오는 실질적인 중국 통치권자가 되기 전까지는 장쩌민 주석과 그의 제휴세력이 추진해온 것과 같은 정책들을 계속해서 이행할 것으로 옵서버들은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후 진타오가 자신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내고 중국의 전도에 영향을 미치려면 앞으로 여러 해가 걸릴 것 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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