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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가 남기고간 상처-세계 무역센터 102층에서 숨진 강준구씨 (문주원 기자) - 2002-09-11


지난해 발생한 9-11 테러 사건으로 희생된 2천 8백 1명중에는 한국인 희생자들 18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강준구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뉴욕 맨해튼의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여객기가 세계 무역센타 건물에 충돌했을 당시 강준구씨는 세계 무역센터 102층에 있던 켄터 핏제럴드 증권회사의 계열사인 ESPED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34살의 아까운 나이에 테러로 희생된 강준구씨는 자상한 남편이자 사랑스런 두 딸의 아버지, 그리고 효성스런 아들이자 손자였습니다.

강준구씨의 어머니 강성순씨는 아들이 보내준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와 공항에 마중나왔던 아들의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준구씨는 평소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캐딜락을 사드리고, 큰 집을 사서 부모님을과 위 아래층에 함께 살겠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강준구씨의 어머니는 이제 먼저 간 아들을 위해 비통한 추모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강준구씨 부모님은 2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와 자녀들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어온 이민 1세대 입니다. 종가집 종손으로 집안의 기둥 역할을 했던 강준구씨는 중고등 학교 시절에는 수업후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 일을 거들기도 해 주변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듣곤했던 든든한 아들, 그리고 때로는 친구같은 아들이였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5살때 부터 초등학교를 마칠때까지 서울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강준구씨는 조부모님들에게도 특별한 손자였습니다. 강준구씨는 생전 조부모님의 칠순잔치에서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특별히 연습한 섹스폰 연주로 조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교육문제로 한국 전라남도 영광에 사시던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조부모님과 함께 살 당시, 준구씨가 늦게 귀가해 할아버지께 심하게 매를 맞았던 사실이 못내 가슴에 맺힌 할머니, 강복순씨는 그때 일을 준구씨 부모님에게도 차마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공부잘하고 효성 지극했던 손자 준구씨를 보살폈던 때를 눈물을 글썽이며 회상합니다.

이렇게 빨리 먼저 보낼줄 알았다면 서울에 보내지 않고 곁에 두고 좀 더 잘해줄 것을, 다섯살난 어린 아들을 부모 곁에서 떼어내 서울로 공부시키러 보냈던 어머니의 마음은 이제 후회로 가득합니다. 곁에 두고 보다 사랑해 주었어야 했는데라며 어머니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섯 살난 강준구씨의 딸, 준희는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서 나는 땀냄새가 가장 좋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준희는 더 이상 아버지의 땀 냄새를 맡을수가 없습니다. 여동생 강정선씨는 9-11 테러 1주기가 되면서 더욱 간절하게 오빠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로 부터 일년전, 바로 이 시각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혼돈 속에서 희생된 강준구씨를 비롯한 한인 희생자 18명, 그리고 총, 2천 8백 1명의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문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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