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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 돕는 일은 독일의 과거 속죄-독일인 의사 볼러첸 - 2002-07-11


독일에서 가정 전문의로 10년동안 활동했던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볼러첸 씨는 지난 1999년에 북한으로 건너가, 한 독일 구호 단체를요원으로 일했습니다.

그 후 2000년 12월에 북한에서 추방당한 볼러첸 씨는, 당시 북한에서 목격한 상황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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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볼러첸 씨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에서 자랐습니다. 볼러첸 씨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찌 정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진을 봤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몹시 야위었던 희생자들의 몸과 그들의 눈빛에 어려있던 공포의 그림자를 떠올렸습니다.21세기를 맞은 지금, 그와 유사한 끔찍한 일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볼러첸씨는 단언합니다.

“두 번다시 그같은 실수를 저지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독일인으로서 다시 침묵을 지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일인으로서 그같은 참극을 막지 못했다는 역사의 비난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는 행동에 나서, 북한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독일인으로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전 세계에 알려서,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마흔 네 살인 볼러첸 씨는 지난 1999년에 자원 봉사 의사로 공산 북한으로 건너 갔습니다. 볼러첸씨는 화상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자신의 피부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해 북한 정부로부터 많은 칭송을 들었습니다. 평양 당국은 볼러첸씨에게 외국인에게는 이례적으로 친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북한 정부의 훈장을 몸에 지닌 볼러첸 씨는 군 검문소들을 통과해 다른 외국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마을과 촌락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볼러첸씨는 기아로 숨진 어린이들의 유해가 묻힌 작은 무덤들을 자주 봤다고 말했습니다. 볼러첸씨는 때때로 병원들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 병원들에는 의약품과 소독약, 전기, 깨끗한 물 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 육군에 징집됐던 아버지를 둔 볼러첸 씨는, 외부 세계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주요 구실로 증거 부족을 들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목격한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구호 단체들의 추산으로 전체 인구의 5퍼센트가 숨진 것에 대해 북한 당국은 홍수와 가뭄만을 탓하고 있습니다.

“식량 부족 때문에 어린이들이 내 손에서 굶어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식량 부족은 자연 재해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정치 제도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많은 식량이 전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수도인 평양에 있는 외교관 전용상점에서는 덴마크 산 사탕이나 철갑상어 알 등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줄지어 늘어서 있고, 많은 여성들은 야채를 다른 식량으로 교환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 갔습니다.”

볼러첸 씨는 구호 단체나 외교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시골 지역의 굶주리는 주민들의 처우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제도가 뭔가 잘못돼 있습니다. 독일인 의사인 제게 그같은 상황은 위급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 저는 행동에 나서서 뭔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전 세계에 알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정치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볼러첸 씨가 북한을 방문한 서방 언론인들에게 실상을 알리기 시작하자, 북한 당국은 신속히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2월에는 결국 볼러첸 씨를 추방했습니다. 그 이후 볼러첸 씨는, 북한의 잔혹한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지난 3월, 25명의 탈북자들이 중국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남한으로의 망명을 요구하는 사건을 배후에서 지원했습니다. 탈북자들을 경제적 유민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이 필리핀을 거쳐 서울로 가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이후 40여명의 탈북자들이 그와 유사한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자신과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그들 탈북자들을 직접 돕기 위해서 그들의 망명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 숨어 지내는 30만명 이상의 모든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곤경에 촛점을 맞추어질 수 있도록, 그들을 지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탈북을 이끌어내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자신의 그같은 구상을 10여년 전 구 소련 시대에 동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서방 외교 공관에 망명을 요청해 결국 철의 장막이 붕괴됐던 사건에 비유했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북한 정부가 거칠고 난폭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러첸 씨의 공격적인 접근법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구호 요원과 외교관들은 볼러첸 씨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런 행동은 돕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잇단 탈북 망명 신청의 여파로 중국과 북한 당국은 국경선 부근에서 탈북자들을 단속을 강화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볼러첸씨는 국제적 관심을 끄는 극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볼러첸 씨는 자신이 너무 큰 모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북한 주민들을 돕는 동시에 자신의 조국인 독일의 과거를 속죄하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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