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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국사] 드레드 스코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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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출신 대법관 중 한명인 제임스 카튼은 제임스 부캐넌,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친구였다. 부케넌은 카튼 대법관에게 드레드 스코트 사건에 대해 언제 판결을 내릴 것인지 묻는 편지를 썼다.

부케넌은 드레드 스코트 사건에 대한 강력한 판결이야 말로 미국에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고 믿었다. 그는 그라이어 대법관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 당선자의 편지를 받은 그라이어 대법관은 남부 출신 다섯명의 대법관의 의견에 찬성 의사를 보냈다. 대법관들은 헌법은 준주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권한을 하원에 부여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려 했다.

이런 일들은 제임스 부캐넌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에 일어 났다. 부캐넌 대통령은 드레드 스코트 재판이 진행중일 때 대통령에 취임했고, 취임식에서, 대법원이 ‘노예문제는 준주의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줄 것을 기대한다는 연설을 했다. 이 신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이 노예 문제를 둘러싼 분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다.

1857년 3월, 대법원은 부캐넌 대통령이 백안관에 입성한 지 이틀 뒤, 드디어 최총 판결을 내렸다.로저 태니 대법원장은 국회 의사당의 작은 방에서 판결문을 낭독했다. 여기에는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은 물론 정부 관리들과 신문기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태니 대법원장은 두 시간 반에 걸쳐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로, 자유를 요구하는 원고 드레드 스코트의 항고를 기각합니다.

첫째, 원고 드레드 스코트는 미국 시민이 아닙니다. 헌법은 백인에 한해서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는 만큼, 원고는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에 사건 심리를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둘째, 원고 드레드 스코트는 현재 원고가 살고 있는 미주리 법에 근거해 판결 받아야 합니다.

미주리 법은 자유 준주에서 잠시 살았던 노예에 대해서는 자유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는 여전히 노예 신분입니다.” 테니 대법원장은 이어서, 스코트가 살았던 자유 준주에 대한 답변을 세번째 이유로 들었다.

“원고 드레드 스코트가 살았던 자유 준주들은 미주리 타협안에 의해 준주가 됐습니다. 이 타협안은 의회에서 1820년에 통과시킨 법률로,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준주의 북부 노예들에게 적용 됐던 겁니다. 하지만, 의회는 이런 법안을 통과 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준주가 새로 탄생할 경우, 노예 제도 문제는 의회가 아니라 그지역 주민들에게 결정권이 있습니다.

의회는 어떤 지역이 정식으로 주로 승격될 때 까지만 준주를 지배할 권한이 있을 뿐이지, 새로운 준주를 폐쇄하고 말고 할 권한은 없습니다. 메인 주 주민이 재산 중 하나 인 자기 말을 소유하고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조지아 주 주민은 자기 노예를 소유하고 노예와 함께 준주에 거주할 권리가 있습니다. 헌법에는, 의회가, 다른 재산들 보다 유독 노예에 대해 더 큰 권한을 부여 한다는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헌법에 있는, 의회가 갖고 있는 유일한 권한은, 재산 소유주인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고 방어해 줘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준주에서 노예제를 허용하지 않는 건, 노예를 소유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주리 타협안은, 비헌법적이고, 의회는 준주의 노예제에 대해 판결할 권리가 없습니다.”

의회가 새로운 통치령에서 노예제를 폐지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남부인들을 열광시켰다.
제임스 부케넌 대통령은 북부든 남부든 대법원의 판결을 노예 문제에 대한 최종 선언으로 받아 들일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국가를 둘로 분열시켰고, 분노를 더욱 가열시켰다.

캔사스 통치령에서는 노예를 찬성하는 정착민들과 반대하는 정착민들 사이에 새로운 위협이 발생했다. 사실 이전부터 몇 년동안 양측은 첨예한 논쟁을 계속해 왔고, 심지어 두 개의 주 정부를 각각 따로 수립했다.

“노예제 지지자들이 캔사스 주의 사법부를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캔사스를 노예를 인정하는 주로 연방에 가입시키려고 제헌 회의 구성을 추진하더니, 이제는 자기들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회의 창설을 인정하는 법안까지 통과 시켰습니다.

문제는 이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노예제 지지자들이 회의에 나갈 대표들을 마음 대로 조종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제공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헌회의가 스스로 법규를 정할 수 있게 하는,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캔사스 주민들의 의사를 헌법 제정 과정에 반영시킬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단 말이지요.

캔사스의 죤 기어리 주지사는 이 법안을 거부했으나, 의회는 표결을 통해 즉각 그 거부를 무효화 시켰다. 예제 지지자들은 기어리 주지사에게 캔사스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기어리 지사는 협박에 시달리며 극도의 불안 속에 시간을 보냈고, 이런 상황에서도 연방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했다. 기어리 주지사는 제임스 부캐넌 대통령에게 사람을 보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존경하는 대통령님. 캔사스 주민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수의 강력한 인사들이 캔사스를 노예제를 인정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분란을 일으키고 있고, 자신들의 뜻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전까지 일으킬 수도 있으니, 캔사스의 안정을 위해 하루빨리 중앙의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부캐넌 대통령은 새로운 캔사스 지사를 임명했다. 새 지사는 1857년 5월 말에 캔사스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을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노예제를 지지하는 쪽 의회가 만든 법은, 그대로 시행을 하겠습니다. 다만 이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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