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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슈 월드 비전 전 국장, ‘국제사회, 북한에 기부자 피로증’


국제사회는 대북 지원이 장기화 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기부자 피로증’을 느끼고 있다고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 비전’의 빅터 슈 전 북한 담당 국장이 밝혔습니다. 타이완 출신으로 지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북한에서 인도주의 지원 활동을 펼쳐온 빅터 슈 전 국장은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최근 현직에서 물러난 슈 국장을 조은정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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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빅터 슈 국장님. 지난 15년 간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펼쳐 오셨는데요, 어떤 일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으신지요?

답) 제가 북한 관련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북한에 큰물 피해가 났던 1996년 이었습니다. 당시 국제 기독교 구호단체인 `처지 월드 서비스’ 의 아시아태평양 담당관으로 북한에 인도주의 지원 물품을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때 많은 국제 구호단체들은 북한에서 일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커다란 흥분감도 있었죠. 구호단체들은 사명감을 갖고 큰물 피해를 입은 북한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문) 이런 분위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들은 손꼽을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활동 자금 모금도 과거에 비해 저조하고요. 예전에는 평양에서 구호단체 통합회의에 참석하면 유럽의 각국 정부들과 국제 구호단체들에서 북한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넘쳤는데 요즘은 그런 소식이 드뭅니다.

문) 구호단체들 사이에서 북한 지원과 관련해 열기가 시들해진 이유가 뭔가요?

답) 제 생각에는 매우 강력한 ‘기부자 피로증’의 추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국제사회의 대북 원조가 시작됐을 때는 북한의 큰물 피해에 대한 응급 지원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북 원조가 매우 장기간으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보통 구호단체들은 응급 지원을 3년 정도 진행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많은 단체들이 북한 내 활동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정도의 협조가 없거든요. 무작위 접근이라던가, 지원 물품의 분배를 정확히 문서화 하는 문제 등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 국장님이 몸담았던 ‘월드 비전’을 비롯한 5개 미국 비정부기구들은 지난2008년과 2009년 미국 정부가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 7만 5천여t을 분배했었는데요. 당시 북한 당국과 매우 높은 수준의 분배 감시 조건에 합의했었지 않습니까?

답) 당시 북한 정부는 미국 단체들의 분배현장 실사 24시간 전에 통보만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지난 1996년 이래 북한이 이처럼 짧은 통보 시간에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합의였죠. 또 미국 구호단체들이 평양에 처음으로 상주 사무소도 열었습니다.

문) 과거에는 미국 단체들이 상주 사무소를 왜 열지 못했나요?

답) 북한 당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정상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구호단체들은 평양에 상주사무소를 열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관계가 정상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국 정부 사이에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합의가 없다는 것인데요. 만일 미국인 요원이 다치거나 사무실이 습격을 받으면 이에 대한 보상과 책임 소재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북한 측은 지적했죠.

문) 반면, 미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을 구호단체들이 대행했을 때는 미국 정부와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을 열 수 있었군요. 미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은 분배를 대행하는 세계식량계획에 소속된 한국어 구사 요원 숫자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중단됐는데요. 이 문제에 대한 북한 측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답) WFP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 당국이 한국어 구사 요원의 활동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호단체들은 활동 초기부터 한국어 구사 요원들을 고용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활동 요원들의 25%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문) 북한 당국이 한국어 구사 요원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제가 알기로는, 북한 당국은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는 국제요원들이 작은 마을 등에서 주민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안보와 관련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문) 지난 15년 간 북한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을 들 수 있습니까?

답)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매우 미미하죠. 하지만 저는 황해북도 도치리에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하도록 소개하고, 이 곳에 북한 내 첫 유기비료 공장을 세운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측도 이 부분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화학비료만을 사용해 토질이 악화된 상황이라 유기비료 공장이 더 많이 설립돼야 합니다.

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15년이나 대북 구호활동에 전념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저는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타고 북한 구석구석을 방문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가난하며, 국제사회의 원조를 절실히 원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굶주림을 극복하고 인생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누군가는 꾸준히 인내하며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북한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기독교계에서도 오랜 기간 몸 담았기 때문에, 그 쪽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문) 빅터 슈 국장님. 북한 주민들을 아끼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북한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지난 15년 간 대북 구호 활동을 펼쳐온 빅터 슈 월드 비전 전 북한 담당 국장과의 인터뷰를 전해드렸습니다. 대담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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